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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군산 적산 가옥과 가이즈까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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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9-2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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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청을 찾기 전, 1시간 남짓 여유가 생겼다. 전라북도 군산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쉽게 들르기 어려운 도시다. 시청에서 하릴없이 식순을 기다리느니 이 귀한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곰곰이 생각했다. 몇 번의 인터넷 검색 끝에 마음이 향한 곳은 일본식 적산가옥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였다. 시청과 멀지 않은 그곳으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군산 시내에 들어서자, 거리는 놀랍도록 단정했다. 전신주와 난마처럼 얽힌 전선이 보이지 않아 한층 깔끔해 보였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무질서하게 세워진 전봇대와 치렁치렁 늘어진 가공 케이블이 미관을 해치기 마련인데, 군산은 지중화 사업을 마쳐 도시의 맥이 한층 곧고 청명하게 드러난 듯했다.


적산가옥은 ‘적이 남기고 간 집’이라는 뜻을 지닌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주택을 가리킨다. 적산가옥은 유독 목포나, 부산, 군산, 인천 등 항구 쪽에 많다. 당시 조선의 항구는 수탈당한 공물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늘 물자와 사람이 넘쳤다. 게 중에는 식민지 조선에서 한몫 잡고자 동해 건너온 일본인이 많았고, 특혜를 입어 큰 부를 이루기도 했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제 나라인양 아예 집을 짓고 눌러사는 사람도 생겼다. 집은 일본 양식 그대로 차용해서 집을 지었다.


일제 패망 후 일본사람들이 본국으로 도망친 이후 집들은 빈집으로 남았다. 대부분 착취당했던 조선인들에 의해서 불태워졌다. 제법 큰 주택은 미군정에 의해 보호되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적산 가옥으로 지정되어 국유시설로 보호했다. 군산의 적산 가옥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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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군산에서 활동한 유명했던 포목 상인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주택]

 

군산도 항구도시였던 만큼 적산가옥이 많이 남았다. 그중 신흥동에 위치하고 있는 가옥은 2층 규모의 큰 저택이다. 2005년에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원래 히로쓰라는 일본 주인의 이름을 따서 '군산시 히로쓰 가옥'으로 불렸다. 

 

집 내부에는 온돌방과 다다미방, 도코노마, 긴 복도가 남아 있고, 건물 사이에는 연못과 석탑·석등을 품은 일본식 정원이 조성돼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낯익은 장면들이 곳곳에 겹쳤다. 좀 낯이 익었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영화 촬영 명소로 그동안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몇 번은 보았던 작품이라 아마 이 영화를 통하여 눈에 익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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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적산가옥 내부 복도]

 

정문을 나와 뒤돌아보니 정원 가장자리를 지키는 두 그루의 향나무가 시선을 붙든다. 군산 적산가옥에 어울리게 심어진 이 나무는 다름 아닌 가이즈카 향나무다. 일본에서는 정원수와 기념수로 흔히 심었고,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침략을 기념하며 심은 것에서 비롯돼 ‘왜향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학교나 관공서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향나무 중 상당수가 가이즈카 향나무다. 한때 일제의 흔적을 지운다며 많은 곳에서 베어내고 은행나무나 소나무로 대체하기도 했지만, 이 나무는 여전히 군산의 적산가옥처럼 역사의 켜를 증언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가이즈카 향나무가 지금도 건물의 정원수로 가꾸어지는 것은 나무가 공해에 강하고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잎도 날카로운 바늘잎이 아니라 부드러운 비늘잎을 지녀 손으로 만져도 따갑지 않다. 일본식 주택의 돌계단과 석등, 그리고 이 나무의 고즈넉한 초록이 한데 어우러지며 일제 강점기의 흔적을 오늘에 전한다.


우리 땅에서 자라난 향나무는 천년을 산다 해도 과언이 없을 만큼 수형이 아름답고 향을 품는다. 향이 나서 향나무로 불리는 향나무는 목재 자체에서 향이 난다. 다른 나무는 봄이나 여름에 꽃이 피어야 비로소 향긋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향나무는 사시사철 나무 자체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천연 방향제로 옷 속에 넣어 다녔다.


군산시에는 적산가옥 말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 초원사진관을 가봤다.

 

군산시 신창동 1-5번지에 소재하는 초원사진관은 한석규와 심은하가 만난 장소다. 죽음을 앞둔 사진사 한석규가 사랑을 추억으로 남기고 떠난 자리. 그가 남긴 대사가 가슴을 적신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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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신창동 1-5번지 초원사진관]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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