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사막 모래벌판보다 더 쓸쓸한 바다 모래벌판]
태안 신두리 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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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8-12 10:18본문
불모(不毛), 아무 식물도 자라지 않는 땅.
비가 내리지 않아 어떤 초목도 움틀 수 없는 죽음의 땅을 일컫는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에서 가장 넓은 사막은 남극이며, 그다음은 북극,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하라 사막이다.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작물을 재배할 수 없는 땅은 쓸모가 없다. 정주 생활을 해온 우리 민족에게 풀이 나지 않는 불모의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땅일 뿐이다.
국내 최대의 모래언덕, 사막 아닌 생명의 터전
태안반도의 서북쪽 끝자락, 바다와 맞닿은 곳에 신두리 해안사구가 있다. 길이 3.4㎞, 폭 0.5∼1.3㎞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모래언덕이다. 수만 년 동안 바닷가에서 밀려온 모래가 바람에 실려 내륙으로 옮겨지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
해안사구는 바다와 육지 사이의 완충 지대다. 파도와 조류, 바람이 함께 만든 이 지형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사막의 사구가 불모와 황량함을 지녔다면, 신두리 해안사구는 다르다. 바다와 인접해 습기가 많고, 인근 갯벌의 영양분이 더해져 풀과 꽃이 자라며 곤충과 새들이 드나드는 살아 있는 땅이다.

[태안 신두리 사구]
입구를 지나 탐방로로 들어서면 길 양옆으로 낮게 풀이 자라난다. 양쪽에 목책과 로프가 이어진 길은 사람과 사구를 구분 짓는 경계선이다. 모래언덕과 그 위의 식생은 발자국 하나에도 쉽게 훼손된다. 한 번 무너진 사구는 원래 모습을 되찾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래서 지정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탐방객의 기본 예의다.
사구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시야가 넓어진다. 저 멀리 부드러운 곡선의 모래언덕이 이어지고, 바람이 남긴 무늬가 표면을 덮는다. 바람이 그려놓은 곡선은 사구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계절마다 표정도 달라진다. 봄에는 해당화와 모래사초가, 여름에는 억새가 바닷바람 속에 자라나고, 가을이면 은빛 억새꽃이 언덕을 물들이고, 겨울에는 고요한 모래결만 남아 고즈넉하다.

[태안 신두리 사구와 연결된 해안 모래벌판]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관광 100선’에도 선정됐다. 이곳은 학술적 가치가 높은 해안 지형이자, 생태계의 보고다. 사구 주변의 갯벌은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지로, 철새들이 머무는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한다. 사구와 갯벌, 바다는 하나의 생명권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이라면 모래언덕 위에서 바람의 결을 느끼고, 발아래 식물과 곤충을 살펴보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길 권한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바람과 파도, 모래가 오랜 세월 쌓아올린 자연의 기록이다. 모래 위 발자국이 바람에 사라지듯, 우리의 무심함이 이 풍경을 지워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구 너머로 서해가 펼쳐진다. 바다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잔잔한 날에는 수평선이 또렷하고, 바람이 강하면 거친 물결이 사구 쪽으로 밀려온다. 해변에는 두 줄의 발자국이 나란히 이어져 있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은 간격. 그저 바닷가를 함께 걸었을 뿐이지만, 모래 위에서는 오래 기억되는 한 장면이 된다.

[태안 해안에 남긴 어느 커플의 발자국]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