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나는 난쟁이 나무가 아니에요.]
더디지만 굳세게 자라는 회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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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7-22 18:24본문
요즘 짓는 주택은 건축법에 따라 녹지율을 확보하기 위해 조경수를 심는데, 한결같이 사철나무나 쥐똥나무, 회양목을 심는다. 그중 회양목은 값이 저렴하면서 잘 자라기 때문에 많이 선호한다. 회양목이 크기는 작아도 엄연히 조경수고, 게다가 처음 땅에 삽질 한번 하고 심기만 하면 사람 손이 따로 가지 않아도 꿋꿋하게 잘 자란다.
사실 나무 중 회양목은 별 정감이 가지 않았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많이 있건만, 왠지 건축업자의 얄팍한 장사 잇속 때문에 집 화단이나 거리에 회양목만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런 의구심을 내비치면 사람들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회양목이 상록수라 사시사철 초록색을 유지하고, 공해나 추위에도 강하고, 또 모양내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많이 전정해도 건강하게 잘 자라기 때문에 심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예로부터 회양목은 고급 나무로 귀하게 취급받았다는 말도 덧붙인다.

[석축 사이목으로 심어놓은 회양목]
회양목은 강원도 금강산 회양 부근에서 발견된 나무라고 해서 회양목이라 부른다. 그전에는 황색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황양목(黃楊木)이라 불렀다. 우리나라가 원산지라서 우리 땅 어느 곳이라도 잘 자라고 학명에 koreana가 들어간다. 특히 경북, 충북, 황해도 지역 등 석회암 지대에서 잘 자라서 석회석 지표식물로도 불린다.
주변 화단에서 흔하게 보는 회양목은 모두 키가 작다. 전정을 자주 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자체가 아주 더디게 자라는 나무다. 줄기가 손목 두께 정도 되려면 수십 년은 족히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은 여주 영릉의 회양목인데 그 나무조차 줄기 둘레는 고작 팔목 두께에 불과하다. 수령 300년 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임에도 그렇다.
느리게 자라는 대신 나무 재질은 매우 조밀하고 치밀하다. 한번 만들면 평생 간직하게 되는 도장으로 회양목이 쓰이는 이유다. 예로부터 회양목은 도장나무라고 불리며, 관인이나 인장, 낙관 등 여러 번 사용해도 닳지 않는 단단한 물품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 그만큼 나무는 지금과 달리 귀한 나무였다. 예전 회양목으로 만든 얼레빗도 여인에게는 매우 값진 물건이었는데, 시집올 때 가져와서 저승 갈 때 가져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오래간다.
회양목은 꽃이 핀다. 나무로서 당연하다. 다만, 너무 주변에 많다 보니까 회양목을 나무로써 대하지 않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3월부터 노르께한 연두색 꽃을 피워낸다. 너무 작은 꽃이고 꽃 색도 잎과 비슷한 초록빛이라 볼품없어 보이지만, 이래 봬도 이른 봄에는 아까시나무가 꽃 피기 전까지는 벌들에게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앙증맞게 작은 꽃이라도 그 어떤 꽃보다 향기롭고 꿀이 많아 벌들이 가장 사랑한다.
![[포맷변환]20250722[회양목꽃과 열매.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7/20250722181931_iuleuvfl.jpg)
[회양목에 핀 꽃과 열매]
꽃이 피면 당연히 열매도 맺는다. 열매껍질은 세 갈래로 나뉜다. 녹색이었던 열매가 익으면서 갈색으로 변하고 갈라진 모양이 꼭 부엉이를 닮았다. 그래서 회양목을 부엉이나무라고 부른다. 열매가 9월쯤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씨방의 씨를 퍼뜨린다.
사계절 푸를 것 같은 회양목도 가을에는 붉게 물든다. 그러고 보니 회양목에 정말 무관심했다. 회양목도 단풍이 들다니. 아닌 게 아니라 회양목 본래 이름은 잎이 황색인 버드나무라는 뜻의 황양목이었다. 늘 푸를 것은 초록빛 도톰한 잎도 찬 바람이 불면 적갈색으로 변한다. 키도 작고 느리게 자라 나무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드는 줄 모른다. 이런 습성 때문에 황양액윤년이란 말까지 나왔다. 다른 나무가 잘 자랄 때 회양목은 윤년에 액운을 만나 키가 줄어든다는 뜻으로 일을 느려터지게 할 때 빗대는 말이다. 회양목 자라는 것을 보니 속에 울화가 치밀만도 하다.
어느 날 뜻밖의 장소에서 회양목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한여름 수정구 신흥역 인근 건물 앞 화단,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햇살을 피하고 있을 때다. 머리를 올려다보니, 맙소사! 회양목이었다. 회양목 나뭇가지 아래에 내가 앉아 쉬게 될 줄이야. 사실 국가생물종지식정보에서 회양목 높이는 7m로 기재되었다. 가뜩이나 더디 자라는데 매년 가지치기하며 화단 울타리로 만드는 통에 회양목이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을 뿐이다. 나무가 원래 키가 무릎을 넘어가지 못하고 눈이 내리면 장독대처럼 소복소복 쌓아지는가 오해했었다.
그리고 회양목이 거목으로 자란 이곳은 1973년에 도시가 새로 생겼을 때 가장 큰 번화가였다. 종합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장을 봤고, 젊은 사람들도 이곳에 모여 웃고 울고 그랬다. 1981년에 중앙극장이 개관되었을 때는 여기가 바로 핫 플레이스였다.
회양목이 심긴 화단의 건축물이 성남시가 생겨난 해 건축허가를 받아 이듬해 준공되었다. 햇수로 따지면 회양목 나이가 족히 반백 살이 넘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도시의 탄생을 기리며 심은 기념식수가 바로 회양목이렷다. 난쟁이 회양목이 키가 커진 것처럼, 도시도 크게 성장했다. 건물 앞 단대천은 복개되어 지하철이 다니며 분당, 판교, 위례와 연결한다. 중앙로 주변 작은 단층집들은 산성대로 고층아파트로 재개발되었다.
보이는가! 이 거대한 회양목 굵은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를! 회양목은 더 이상 난쟁이나무가 아니다. 그리고 상상이나 했을까? 서울 변두리 위성단지가 이렇게 번영한 첨단도시가 되었을 줄.

1973년생 회양목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