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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너희들을 지켜줄게]

인릉산 범바위 흰말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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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7-0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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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누비길에서 흙빛 능선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인릉산. 그 산줄기와 범바위산 사이에 ‘범바위’라는 이름난 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범)를 닮았다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방을 둘러봐도, 낮게 깔린 바위는 영락없는 평범함이다. 이름의 비밀을 풀어보려 바위 아래로 내려가 보아도, 호랑이 형상은커녕 하늘로 솟은 뒷발 한쪽도 찾기 어렵다. 결국 이름 속 호랑이는 실제 모습이 아니라, 예부터 이 일대를 호령하던 상상의 맹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범바위에 오르면 ‘호랑이의 시야’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단숨에 이해된다. 북쪽으론 구룡산·대모산이, 맑은 날엔 멀리 북한산이 푸른 파도처럼 겹쳐진다. 그런 장쾌한 풍경 한가운데, 바위 등판에 조그맣게 박힌 두 그루 나무가 눈길을 붙든다. 흙 한 줌 없을 것 같은 돌판에서, 꼭 형제라도 되는 듯 어깨를 맞대고 선 그 나무. 가까이 다가가니 잎은 둥글넓적, 가지는 묘하게 붉게 빛난다. ‘흰말채나무’다.

 

20250703[인릉산 배경.jpg

[인릉산 범바위산]

 

공원 조경에서 자주 보이는 흰말채나무를, 그것도 척박한 바위 위에서 마주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말채나무속(屬)의 나무들은 본래 산기슭에서 10 m 안팎으로 자라는 목본이다. 인릉산은 군 시설 덕분에 개발이 늦어져 중부 지방 대표 수종—층층나무·때죽나무·서어나무—이 거의 빠짐없이 살아남았는데, 흰말채나무도 그 성긴 숲 사이에서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말채나무라는 이름은 ‘말(馬) 채찍’에서 왔다. 가지가 고르고 질겨 채찍 재료로 썼기 때문이다. 이 ‘흰말채’는 키가 한결 낮아 관목에 가깝지만, 껍질이 부드럽게 휘는 성질과 강도는 여전하다. 여름엔 순한 녹색이던 줄기가 가을부터 겨울 내내 불타듯 붉어지고, 유백색 열매가 앙증맞게 달린다. 추위에 끄떡없어 조경수로 사랑받으며, 겨울 정원에 ‘Midwinter Fire’라는 영어 이름처럼 한 줄기 불꽃을 밝힌다.


해님달님 전설과 호랑이 붉은 피

 

범바위에서 붉게 물든 흰말채나무 두 그루를 보니 호랑이를 피해 달아난 오누이 이야기가 떠오른다. 마침 두 나무가 오누이처럼 사이좋게 마주 자라 마치 바위에서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것 같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약속을 깨고 오누이의 엄마까지 잡아먹은 호랑이는 오누이 집까지 찾아왔다. 욕심많은 호랑이를 피해 오누이는 높은 산까지 달아났다. 막다른 바위 꼭대기에서 오누이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다.

 

‘저희를 살려주시거든 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하늘이 무척 가엾이 여겨 금 동아줄을 내려보냈고 오누이는 호랑이를 피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호랑이도 같이 기도했지만, 마음씨 나쁜 호랑이에게는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었다. 결국 줄이 끊어지면서 호랑이는 땅에 떨어져 죽고, 호랑이의 붉은 피가 수수밭을 붉게 변하게 했다.

 

그런데,, 오늘 범바위에서 흰말채나무를 보고 있자니, 호랑이 핏물이 흥건히 적셔진 것이 흰말채나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만큼 흰말채나무의 가지는 붉디붉다. 


그런데, 붉은 줄기 나무를 왜 흰말채나무라고 부를까? 노랑말채나무는 줄기가 노란색이라서 노랑말채나무로 불리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식물학자 린네가 말채나무를 분류하면서 검은 열매의 말채나무와 다르게 흰말채나무 열매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20250703[흰말채나무 꽃말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jpg

[흰말채나무 꽃말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


바위 틈에서 솟은 붉은 가지 두 그루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팔을 뻗고 있다. 흙 한 줌조차 없는 돌판에서 뿌리를 내리고, 서로를 향해 기대듯 자라는 모습은 마치 기도하던 오누이가 손을 맞잡은 채 굳게 선 형상 같다. 세찬 바람이 불어도, 가뭄이 찾아와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그 자리를 지키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조용히 작은 전설 하나를 건넨다.


오래전, 흰말채나무의 줄기는 본래 흰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호랑이를 피해 바위 끝까지 도망친 오누이가 산신에게 간절히 기도하자, 하늘에서 금 동아줄이 내려왔다. 오누이는 그 동아줄을 타고 무사히 하늘로 올라갔지만, 뒤따라온 욕심 많은 호랑이에게는 썩은 동아줄이 내려와, 결국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때 호랑이의 피가 흰말채나무 위로 떨어져, 가지가 붉게 물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범바위'라 불렀고, 흰말채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야기가 왠지 그럴듯하다. 게다가 흰말채나무가 자라는 지역은 백두산과 시베리아 일대로, 실제 호랑이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흰말채나무의 열매는 마치 눈동자처럼 생겨, 누군가를 조용히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주보니 붉게 물든 가지 끝에서 나직한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당신이 나를 지켜본 것처럼 나도 당신을 보고 있었답니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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