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갈마치고개는 칡과 관련 없데요.]
갈마치고개를 뒤덮은 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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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27 09:39본문
갈마치고개에 개설된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넓지 않고 인적도 드물다. 숲속에 광주와 성남을 잇는 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야생동물의 이동로가 단절되었다. 그래서 정상에 에코브릿지를 설치하여 동물들이 숲속을 자유롭게 다니게 하였다. 에코브릿지를 이용하지 못하는 덩치 큰 동물들, 예를 들어 고라니는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여 자주 로드킬을 당한다.
여기 에코브릿지가 좀 특이한 점은 동물이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나란히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야생동물 옆에 인도를 설치한 것이 그리 바람직하진 않지만, 숲길을 걷는 사람 편의도 생각해서 사람과 동물이 나란히 다닐 수 있는 구조로 설치하였다. 다만, 동물과 사람이 다니는 길 사이로 높다란 나무 울타리를 설치하여 서로 간섭하지 않게 했다.
사람 다니는 길은 주기적으로 빗질도 하고 관리를 하는데, 울타리 너머로 동물 다니는 길은 자연 상태로 놔둔다. 그러다 보니 웃자란 나뭇가지가 울타리를 넘어와 길을 막곤 한다. 특히 담장 너머 슬금슬금 넘어오는 칡은 최대 골칫거리다. 히드라의 목을 자른 것처럼 칡은 잘라내도 더욱 맹렬하게 가지를 뻗는다.
칡은 생명력이 강한 덩굴식물이다. 햇볕을 찾아 땅 위를 더듬거리는 칡 줄기가 다른 나무를 만나면, 그 나무를 꽉 옥좨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먹으며 자란다. 칡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하여 칡잎 아래 다른 나뭇잎은 햇빛을 받지 못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만다.
![20250527[갈마치고개 칡].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27093643_acxecykv.jpg)
[칡으로 뒤덮인 갈마치고개]
칡이 자라면 주변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해 죽고 만다. 칡이라는 이름도 칭칭 감는다는 뜻의 츩에서 왔다. 그래서 산림청에서는 칡을 유해식물로 지정하고 나무를 휘감는 덩굴만 보아도 얼른 베어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갈마치 도로 위 생태통로 너머는 칡이 굵은 덩굴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갈마치라는 이름도 칡이 많이 자라는 지역이라서 칡 갈(葛), 고개 현(峴)을 붙여 갈현이라 부르면서 갈마치가 되었다고 한다. 갈(葛)을 풀이하면 물이 적은 곳(渴)에 자라는 풀(艸)이라는 뜻이 된다. 글자풀이 그대로 칡뿌리는 깊게 뻗어 건조한 곳에서도 물을 찾아낼 수 있어서 거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갈마치 지명은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준 뒤 다시 길을 떠났다고 하여 갈마치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시간을 거슬러 위례 백제 시대, 군사들이 말을 타고 이 고개를 넘나들 때 고개가 가팔라 말들이 목말라했다고 붙여졌다고도 한다. 아무튼 말(馬)이 고개를 넘을 때 갈(渴)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고개라는 뜻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이름에 칡이 얽힌 이유는 일제강점기 갈마치고개의 앞 글자를 ‘목마를 갈(渴)’ 대신 그저 ‘칡 갈(葛)’로 고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제 용맹한 기마병의 말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넘던 고개는 칡만 넝쿨 채 자라나는 아무런 의미 없는 그저 그런 고개가 되었다.
그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칡넝쿨은 무심히 갈마치고개를 점령한다. 고개 서쪽 비탈에는 지난 태풍 때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많았다. 그렇게 생채기 난 숲은 어김없이 칡덩굴이 찾아서 얽혀든다.
처음에는 가는 뿌리에서 연약해 보이는 줄기가 나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그러다가 줄기 촉수에 뭔가 닿는 순간, 닥치는 대로 붙잡고 하루에 30㎝까지 자란다. 그리고 마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쓰러진 나무 밑동을 삼키며 위까지 칭칭 감싸며 올라간다. 우듬지까지 올라간 칡 줄기가 더 이상 지지할 것이 없을 땐 뱀이 똬리를 틀 듯 억센 줄기를 둘둘 말고 자기 몸에 의지하여 올라간다.
![[포맷변환]20250527[칡꽃].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27093648_iaufogfl.jpg)
[칡꽃과 칡 잎사귀, 그리고 열매]
칡이 식물 생태계의 무법자 같지만, 사실 칡은 산림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는 식물이다. 햇볕을 좋아하는 칡은 산림이 훼손된 거친 땅에서 그저 꿋꿋하게 살아갈 뿐이다. 칡이 자라면 넓은 잎으로 토양이 침식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콩과식물처럼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그리고 자연 생태계가 복원되면 칡은 알아서 사라진다. 숲의 천이단계에서 키 큰 나무가 많아지면 칡은 햇볕을 받지 못해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칡은 숲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예부터 사람들 일상에 많이 쓰여 도움을 주었다. 굶주릴 때 녹말이 많은 칡뿌리를 캐내어 끼니를 때울 수 있었고, 열나고 몸살이 있을 때도 칡뿌리는 해열제가 되었다. 칡 줄기도 매우 질겨 삼태기나 밧줄로 사용했다. 지금도 칡즙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음료다.
그리고 한여름 개화하는 칡꽃은 관상학적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붉은색이 도는 꽃은 고고하게 곧추선 채 고상하기까지 하다. 향기 또한 진하여 벌 나비가 칡꽃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산속의 진주라고 불리는 칡꽃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가야시대 도공에게 딸 설희와 제자 바우쇠가 있었다. 어느 날 신라가 쳐들어와 바우쇠는 전쟁터로 끌려갔다. 가야가 패전하고 바우쇠의 소식이 끊어졌지만, 설희는 일편단심 바우쇠만 기다렸다. 몇 년 후 한쪽 팔이 불구가 된 바우쇠가 돌아왔고 설희는 그를 맞이하며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칡넝쿨 부부’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설희는 칡꽃 아씨라고 불렀다. 그들은 심성도 고와 나라에 흉년이 들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다. 나중에 칡넝쿨 부부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해마다 칡꽃이 피면 여인들은 머리에 칡꽃을 꽂고 그들 부부를 기리기도 했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