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기독교 성지에 자라난 십자가 나무]
청계산 둔토리 동굴 산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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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22 10:59본문
청계산 국사봉에서 서들산 방면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산기슭에 둔토리 동굴이 있다. 둔토리는 청계산 산줄기 안골에 군대가 주둔했다고 해서 둔도리로 부르다가 둔토리로 되었다. 둔토리 동굴은 루도비꼬 동굴로도 불린다. 병인박해 새남터에서 순교한 루도비꼬 신부가 은신하였던 동굴로 천주교 성지다.
루도비꼬 신부는 프랑스 랑공에서 태어났다. 조선에 왔을 때는 흥선대원군 시퍼런 서슬 아래 천주교인들이 무참하게 죽어갔던 시기였다. 언제 붙잡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루도비꼬는 낮에는 산기슭 동굴에 몸을 숨겼고, 밤이 되면 천주교를 전도하러 다녔다. 그러나 곧 체포되어 서울 의금부로 압송되고 1866년 3월 새남터 형장에서 처형당했다. 조선에 온 지 일 년도 안 되었으며 27살 나이였다.
깎아지는 흙 비탈면에 있는 동굴은 바위로 되었으며, 그 위로 묵은 낙엽이 연신 쓸려 내려왔다. 그럼에도 루도비고 동굴은 천주교 성지로 관리가 되나 보니 주변은 흐트러짐 없이 잘 정리되어 있다. 동굴 안을 살펴보니 성모 마리아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반면 뒤돌아본 청계산 산세는 험준하고 적막하다.
![[포맷변환]20250522[천주교 성지 루도비꼬 동굴].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22105516_dbapmfde.jpg)
[천주교 성지 루도비꼬 동굴 (국사봉)]
루도비꼬는 한겨울 청계산 산속에서 추위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었다. 프랑스 젊은이에게 이국땅 청계산은 너무나 낯설고 험준했다. 한겨울 바위 동굴은 추위를 피할 수 없었고, 먹을 것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동굴 안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눈바람을 낙엽으로 막으며 신께 그저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그저 산딸나무가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루도비꼬 동굴을 찾아가는 숲길에서 산딸나무를 보았을 때, 공원에서 조경수로 보던 나무를 산에서 야생으로 보게 되니 무척 놀랐다. 층층나무처럼 수형이 아름다운 산딸나무가 하얀 십자가 모양의 꽃으로 뒤덮였으니, 신비감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을이 오면 산딸나무에는 딸기 모양의 붉은 열매가 잔뜩 달려있다. 계절 따라 볼수록 신기한 나무다. 사실 산딸나무가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어느 산야를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나무다.
이 산딸나무가 기독교인에게 성스러운 나무며 예수의 나무로 불린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쓰인 나무가 산딸나무였고, 꽃잎도 공교롭게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 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꽃잎 끝 갈색 무늬마저 예수님 손바닥에 박힌 못을 가리키고, 붉은 열매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며 산딸나무야말로 기독교를 상징하는 나무라 생각한다. 꽃말이 희생인 것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인간을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다.
![[포맷변환]20250522[산딸나무 하얀 꽃잎].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22105554_nqvvbcvf.jpg)
[산딸나무 하얀 꽃잎]
기독교 국가인 유럽과 미국에서는 십자가 모양으로 피는 꽃 때문에 산딸나무를 정원수로 심는다. 그런데, 아무리 꽃이 십자가 모양인들 결국 예수님을 죽게 만든 나무다. 그래서 그런 원망이 묻어나서인지 영어로 산딸나무를 Dogwood라 부른다. 물론 Dogwood에 대한 어원으로 산딸나무 목질이 단단하여 나무꼬챙이(Dag)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 dag가 dog로 변했다는 설도 있지만, 산딸나무에 애증이 교차한 것은 사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딸나무 열매가 딸기처럼 생겨서 산에 사는 딸기나무라는 뜻으로 산딸나무라고 지었다. 열매는 먹을 수 있으며 가끔 모란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노상에서 한 소쿠리에 산딸나무 열매를 수북이 담아 5,000원에 판다.
우리가 산딸나무 빨간 열매가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닮아 산딸이란 이름을 지었다면, 이웃 중국에서는 꽃잎이 사방으로 비춘다고 하여 사조화라고 부른다. 산딸나무 꽃잎은 밤에 보면 달빛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산딸나무 꽃잎이 두 장씩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양이 흰 두건을 쓴 스님 같다고 하여 산법사라 부른다. 독일 식물학자가 산딸나무를 일본에서 채집하여 유럽에 소개했기 때문에 산딸나무 학명에는 일본에서 산딸나무를 부르던 사투리 ‘쿠사’인 kpusa가 종명으로 들어갔다.
다른 나라가 모두 꽃잎을 기준으로 작명했을 때, 우리나라는 열매를 기준으로 이름을 지었다. 먹을게 귀했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산에서 탐스러운 딸기가 열렸던 나무는 당연하게 산딸기나무로 불렀다. 딸기나무란 이름만 듣고도 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넉 장 하얀 꽃잎은 진짜 산딸나무꽃이 아니다. 가지마다 겹겹이 얹혀 있는 흰 꽃은 나뭇잎이 꽃잎처럼 변한 것이다. 진짜 꽃은 가운데 작고 볼품없는 초록색 구슬 모양이다.
꽃이 워낙 못나다 보니 벌과 나비를 유인하기 위해 꽃받침을 꽃잎처럼 화려하게 포장하였다. 어쩌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벌과 나비처럼 꽃받침을 꽃으로 착각하여 어여삐 여길 때, 우리 조상은 산딸나무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어 본 셈이다.
![[포맷변환]20250522[산딸나무 열매].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22105635_rvlfcnbv.jpg)
[산딸나무 열매. 가을이 오면 딸기처럼 붉게 익는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