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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신흥동은 책 읽는 마을입니다.]

꿀벌을 모으는 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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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2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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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죽을 건 것은 아니나, 성남시 수정구에 소재하는 태평동과 신흥동 이름이 참 유감스럽다. 태평동과 신흥동 동명은 광주대단지가 성남시로 승격할 때 지어졌다. 언뜻 보면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시가 새로 생기면서 마을 이름도 덩달아 새로 생긴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태평하게 살라고 태평동, 새로 부흥하라고 신흥동이라고 마을 이름을 지었다니 관공서에서 지명을 급조한 티가 너무 난다.

 

하지만, 태평동과 신흥동 바로 곁 동네는 옛날부터 불리던 이름 그대로 남아 있다. 수진동은 세종대왕 아들 평원대군이 어린 나이에 죽자, 인간 수명을 관장하는 북두칠성의 영산 영장산에 장사를 지내고, 그 묘소를 관리하는 수진궁을 지었으므로 수진리라 불린 역사가 있다. 단대동은 탄천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려면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는데, 그 고개의 흙이 붉었으므로 단대골이라 불렸던 내력이 있다. 위쪽 동네 복정동은 예로부터 물맛이 좋고 복을 불러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복우물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한결같이 그 지역의 문화와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태평동과 신흥동에는 사람들의 살림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태평동은 원래 산성 밑에 참나무가 우거져 있어 옛날에 숯을 굽던 골짜기라는 뜻에서 숯골이라고 불렸다. 신흥동은 옛날부터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모여 앉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여 독정(讀亭)이란 이름이 있었다. 책을 낭독하는 소리는 끊기지 않는 마을이라! 사람살이의 멋이 얼마나 기품 있게 배어 있는 이름인가? 그런 지역을 새로 흥하라며 신흥동이라 이름을 짓다니! 그나마 신흥동에서 탄천으로 흐르는 하천 이름이 독정천이다. 하지만, 이마저 독정천을 복개하는 바람에 하천의 흔적도 이름도 사라졌다.


이 땅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것을 어찌 알려줄 것인지 늘 답답했는데, 마침내 그 뜻을 알릴 수 있는 증거를 찾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그 징표는 바로 쉬나무 군락지다. 


책 읽는 마을, 그 뒤뜰에 피던 나무

 

쉬나무가 어떤 나무인가? 글을 읽는 선비라면 회화나무와 함께 서당이나 집 뒤뜰에 심었던 나무가 아닌가! 

 

밤에 책을 읽기 위해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쉬나무는 집 근처에 심어야 했다. 신흥동, 아니 독정에는 옛적부터 글 읽는 소리가 쉬나무 가득한 숲에 한밤중까지 울렸었다.

 

20250520[쉬나무 수형].jpg

 [ 쉬나무의 아름다운 수형]

 

쉬나무란 이름은 수유나무에서 변한 것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여전히 쉬나무를 수유나무로 부른다. 수유란 말 그대로 기름을 얻는다는 뜻이다. 경상도에서는 쉬나무를 아예 횃불이란 뜻으로 소등이라 불렀다.

 

쉬나무는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자라며 가을에 무수히 많은 열매로 기름을 얻을 수 있었다. 한밤중 호롱불을 밝힐 수 있는 그 귀한 기름을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나무일까! 만약 쉬나무가 없다면 비싼 들깨로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야 했다. 그러니 쉬나무는 책 읽는 마을 독정리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나무였다. 쉬나무를 보고서 옛날 옛적 이곳 어디쯤 글 읽는 선비들이 집을 짓고 살았겠다고 생각한다. 


쉬나무는 숲에서 찾기 쉽다. 키가 10여 미터에 이르고 오래 묵어도 나무껍질이 갈라지지 않고 회갈색으로 매끈하다. 한여름에는 나뭇가지 위로 꽃이 하얗게 뒤덮는다. 쉬나무를 모르더라도 저리 꽃이 한 무더기로 모여 있으니, 사람들이 쉬나무를 못 본 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꽃이 많으니, 꿀벌도 많이 몰려온다. 

 

산림청에서는 아까시나무 대신 꿀을 따는 밀원수로 쉬나무나 피나무 심기를 장려한다. 피나무도 밀원수로 벌을 많이 불러 모아 영어로 Bee tree로 불리지만, 쉬나무는 Bee Bee tree로 부른다. 

 

[포맷변환]20250520[쉬나무꽃과 열매].jpg

[쉬나무꽃과 열매]

 

쉬나무 잎은 새 날개 모양으로 달걀 크기만 한 잎으로 마주나기로 난다. 그리고 잎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꽃이 진 자리마다 붉은색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꽃이 많이 핀만큼 열매도 새카맣게 달린다. 쉬나무 꽃말이 번식이라더니 나뭇가지에 그리 다닥다닥 붙은 열매를 보고서 꽃말의 의미를 알겠다.

 

같은 수유나무 중 산수유나무는 붉은 열매가 낱낱으로 가지에 매달려 열매를 하나씩 따지만, 쉬나무는 열매가 까맣고 작은 데다가 너무 많아 열려 아예 가지를 꺾어 채취한다.

 

그렇게 많이 열린 쉬나무 열매는 나무 한 그루에 기름을 30L 정도 넉넉하게 짤 수 있다. 기름으로 호롱불을 밝혔는데, 쉬나무 기름은 그을음이 작게 나서 방에서 글공부할 때 좋았다고 한다. 


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중부 이남의 어느 뒷산이라도 볼 수 있어 영어 이름으로 Korean Evodia로 불린다. 중국 원산지인 오수유란 나무는 오나라에서 나는 수유나무라는 뜻이다. 옛날 초나라 왕이 오나라에서 가져온 약재를 먹고 배탈이 사라지면서 오수유라고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복통에 효과가 좋아 우리나라에서 오수유를 약재로 쓰기 위하여 중국에서 가져다 심었다. 


신흥동 산기슭에서 쉬나무가 있다고 여기 지면에 소개하는 이유는 이곳이 예전에도 사람들이 살았던 터전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것도 책을 좋아하던 사람이 말이다. 이곳은 황무지도 불모지도 아니었다. 애초 새로 부흥할 일도 없었고, 옛것을 허물어 새로운 것을 지을 것도 없었다. 옛 소중한 것을 이어받아 든든한 뿌리로 삼아 무럭무럭 자라면 된다. 쉬나무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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