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때죽인지, 떼중인지, 아니면 때쭉인지..]
사라져가는 고향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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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15 12:13본문
야탑동에서 여수동으로 넘어가는 숲길 초입에는 성남시 향토유적 제3호로 지정된 송산 조견 선생 묘소가 있다. 조견 선생 이름은 청계산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청계산 국사봉을 오르면 정상석에서 ‘국사봉이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청계산에 은거하던 고려의 충신 조견이 멸망한 나라를 생각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글을 볼 수 있다. 청계산 능선 따라 걷다 보면 주봉 망경대에 다다르는데, 이름도 조견 선생이 이 봉우리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며 고려의 멸망을 슬퍼했다고 하여 망경대(望京垈)라 부른다.
조견 선생은 어릴 때 출가하여 절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환속하여 벼슬을 얻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형 조준은 이성계를 새 왕으로 추대하는 데 앞장서 개국공신 1등 평양백에 봉해졌고, 조견 역시 형과 함께 조선을 개국한 공로로 개국공신 2등 평안군에 봉해졌다. 당시 여말선초 격변기는 왕족과 고려를 따르던 신하들이 무참하게 살해된 때였다. 방법도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왕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섬에 몰아놓고 바닷물 속에 모조리 수장시키고 도망친 사람들도 찾아내서 죽여버렸다. 고려의 충신들은 두문동에 은거하며 새 왕조와 담을 쌓고 두문불출하다 결국 모두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반면, 조견 선생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벼슬도 받고 나름 여생을 고향에서 무탈하게 보냈건만, 어찌 고려의 충신이라고 하는지 의아하다. 선생의 처음 본명이 조윤이었으나, 고려가 멸망한 것을 한탄하며 자신의 이름을 개가 들어간 견(犬)자로 고쳐 조견으로 고쳤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당시 고려 충신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생각하면, 단지 이름을 바꾸었다고 고려의 충신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조견 선생 묘소. 성남향토 문화재 3호]
조견 선생 묘소 뒤쪽 숲에는 때죽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숲에서 한두 주 간혹 보는 때죽나무가 이 숲에서는 군락지로 하늘을 모두 가린다. 그런데 때죽나무를 볼 때마다 갸웃거리게 된다. 조견 선생이 고려의 충신인지 아니면 조선의 공신인지 헛갈리는 것처럼, 때죽나무 기원이 때쭉나무인지 아니면 떼죽나무인지, 그것도 아니면 떼중나무인지 아리송하다.
먼저 때죽나무 줄기 껍질은 거무죽죽한 흑갈색이다. 그래서 마치 나무에 때가 죽죽 껴있는 것처럼 보여서, 때죽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때죽나무 열매가 여럿이 매달려 달리는데, 동글동글하고 반질반질하다. 그런데 불경스럽게도 이 모습이 마치 스님들 새벽 예불할 때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같다고 하여 중들이 떼로 모여있다는 뜻으로 떼중나무로 부르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열매가 독성이 있어 이를 짓이겨 물에 풀어 놓으면 물고기를 떼로 죽인다고 하여 떼죽나무로 불렀었다고 하며, 아니면 때죽나무 열매로 빨래하면 옷감에서 때가 쭉쭉 빠져나가기 때문에 때쭉나무로 부르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지역의 숲속 교실에서는 때죽나무 열매로 천연 비누를 만드는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내용은 때죽나무 열매를 그릇에 담아 찧고 휘저으면 거품이 나는데, 이 성분이 비누처럼 아이들 손을 깨끗하게 해준다.

[하늘을 덮은 때죽나무 군락지]
때죽나무 이름의 어원을 살펴보다 보니, 또 의문이 든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 이름을 왜 그렇게 비루하게 지었을까?
일례로 쥐똥나무는 열매가 쥐똥 같다고 하여 쥐똥나무고, 버즘나무는 나무줄기가 버짐 핀 것처럼 얼룩졌다고 하여 버즘나무다. 말오줌나무는 나무에서 말 오줌 냄새난다고 그리 불렀다. 구기자나무란 이름도 순우리말은 괴(ㅈㅗㅈ)나무다. 식물학자가 이름이 너무 민망하여 나무 이름을 구기자나무로 바꾼 것이다. 이런 이름을 보면 도대체 선조들은 나무에 대하여 어떤 미학적인 관점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차라리 북한처럼 쥐똥나무는 검정알나무로, 버즘나무는 방울나무로 부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예부터 귀여운 아이일수록 개똥이, 소똥이라는 천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행여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귀신에게라도 눈에 띄어 역병이라도 걸릴까 봐 그런 못난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다 쳐도 땔감으로 쓰는 나무에 그런 마음 씀씀이로 작명했을 리 없다.
그런데, 때죽나무 이름만 들으면 참 못생기고 지저분할 것 같지만, 때죽나무는 사실 무척 아름다운 나무다. 중국에서는 때죽나무를 흰 꽃이 옥으로 만든 종과 같다고 하여 옥령화로 부르고, 서양에서도 눈처럼 하얀 종이 매달린 것과 같다고 해서 Snowbell로 부른다.
이름이란 존재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고유 의미다. 숲에서 때죽나무를 은종나무로 부르면 바람 소리에서 하얀 종소리가 들리고, 그저 때죽나무로 부르면 그 나무는 손 대기도 싫은 지저분한 나무로 남는다. 꽃을 꽃이라 부르면 꽃을 보는 것이고, 풀이라 부르면 아름다운 꽃도 그저 흔한 풀로 여기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때죽나무 열매와 꽃]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