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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사라져가는 고향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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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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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주변으로 마을이 생기면 울창한 숲과 주거지 사이에 완충지대로 논밭이나 헐벗은 임야가 자리 잡는다. 숲길에서 벗어나 하산하면 완만한 지형 따라 빽빽하던 나무가 드문드문하고 여기저기 밭농사를 짓느라 밭두렁이 바둑판처럼 북돋아졌다. 밭두렁이 이어진 흙길 끝에는 집 한두 채 있고 포장도로로 연결된다. 이곳에 이르러서야 나무는 볼 수 없고 대신 전봇대가 하늘과 땅을 잇는다. 

 

자연과 사람의 모호한 경계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까시나무다. 오뉴월 되면 아까시나무 꽃냄새 맡을 수 있는 곳에서 숲이 시작되었고, 하산할 때도 아까시나무꽃 향기가 맡아지면 산행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예전에는 산 중턱에도 아까시나무를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숲에서 아까시나무 보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내 기억 속에 5월이 다가오면 성남 어느 곳에서나 아까시나무에서 불어오는 꽃향기가 그렇게 진할 수가 없었다. 꽃가루가 휘날리며 콧속을 눅눅하게 해도 아까시나무꽃 향은 멀리서 잔잔한 바람에 밀려와 맡을 수 있었다. 그럴진대 나무 곁을 스쳐 지나가게 되면 꽃향기가 진동한다고나 할까? 그날은 진한 꽃향기에 취해 왠지 모르게 발그레 웃음만 나오고, 왠지 소풍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괜스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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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나무꽃과 잎사귀]

 

사실 옛날 산이 헐벗을 때나 아까시나무를 심었지, 요즘은 일부러 심지 않는다. 원래 우리나라에 자생하지 않았고, 일제 강점기 들여온 나무라는 것과 나무 번식력이 왕성하여 다른 나무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의 70%가 아까시나무꽃에서 따온 꿀이라 주요 밀원식물로 인식하긴 하지만, 산림청에서 백합나무나 쉬나무가 꿀 생산량이 더 높다고 권장하는 바람에 아까시나무는 숲에서 가치를 잃는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좋은 수종으로 벌목되어 빠르게 대체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경제성이나 효용성에서 바라보는 편견일 뿐, 아까시나무는 여느 나무처럼 우리에게 고마운 나무다. 나무가 내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아까시나무는 우리 땅에 주었다.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메마르고 척박한 산지에도 마다하지 않고 뿌리를 내렸다. 그 덕에 비탈진 땅에서 거친 흙이 빗물에 쓸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이라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대기 중의 질소를 토양으로 고정한다. 말 그대로 천연 비료 역할을 하며 거친 땅을 비옥하게 한다. 이런 기름진 땅에 다시 옛 우리 수종인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가 들어오고 숲은 다양한 나무로 자연성을 회복하며 푸르러졌다. 


아까시나무에 대한 오해 중 첫 번째는 나무 번식력이 커서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숲을 독차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 산은 전쟁과 화마로 불타고 그나마 살아남은 나무마저 땔감으로 베는 바람에 메아리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그 척박한 땅에 아까시나무가 먼저 비집고 들어가 사방용 지피식물로서 숲을 푸르게 바꾸었을 뿐이다. 일본이 우리 전통적인 숲 생태계를 망치려 했다지만, 정작 광복 후 우리 산을 녹화사업 할 때 아까시나무를 더 많이 심었다. 아까시나무가 황폐한 산지에 토양을 보존해 주고 지력을 유지해 준 덕분에 우리 고유의 수종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무가 산에서 자랄 수 있었다. 


산이 헐벗을 때는 아쉬워하며 그렇게 아까시나무를 찾더니 이제 산이 푸르고 다른 수종의 나무가 산에서 점점 보이기 시작하자, 이제는 아까시나무가 수형이 좋지 않다는 둥, 쓰임새도 적다는 둥, 뿌리 번식이 강해 주변 나무에 해가 된다는 둥 별별 구실로 나쁜 나무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사에서 아까시나무처럼 토사구팽당하는 신세가 어디 있을까도 싶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시나무는 수명이 짧다. 뿌리가 잘 자라고 빨리 뻗지만, 대신 뿌리 내림이 깊지 않다. 이런 이유로 수십 년 자란 아까시나무는 자람이 나빠지다가 여름에 거센 태풍이나 폭우를 맞으면 뿌리째 뽑혀 넘어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까시나무 대신 건강한 참나뭇과 활엽수가 대신 자라난다. 햇빛을 좋아하는 아까시나무는 숲에 나무가 우거지면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진다. 나무 그늘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베지 않아도 된다.


외래종이라 백안시하는 아까시나무가 오히려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까닭에 오히려 옛 향수를 자극하는 고향의 나무가 되었다. 유년 시절은 유난히 아까시나무와 추억이 많다. 어린 시절 초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한가운데 인근 야산에 오르면 아까시나무의 가시를 피하여 꽃을 따곤 했다. 하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 꽃을 입속에 넣고 부드득 잎줄기를 잡아당기면 달콤한 꿀 향기가 진한 꽃잎에 입안은 터질 듯했다. 꽃을 따먹고 남은 가느다란 잎줄기로 친구들 손바닥을 찰싹 때리는 장난도 쳤다. 그때 가시 돋친 나뭇가지는 어린 피부가 닿을까 조심스럽다. 어릴 때는 당연히 가시가 많은 나무라는 뜻으로 ‘아! 가시야!’라고 외친 말이 나무 이름 그대로 아카시아가 된 줄 알았다. 해마다 봄이 지나갈 무렵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꽃향기가 어린 시절 추억을 일깨우는 나무가 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아까시나무는 미국이 고향이다. 우리나라에 1891년 처음 들어왔다. 인천공원에서 자라난 묘목 한 그루가 우리나라 방방곡곡 퍼지며 자라났다. 아까시나무는 영어로 아카시아가 아니라는 뜻에서 False Acasia라고 쓴다. 진짜 아카시아는 아프리카 열대지방에서 자라며 꽃이 노란색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False를 빼고 그냥 아카시아로 불렀다. 그러다가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진짜 아카시아와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아카시아가 서로 혼동되어 흰 꽃이 피는 아카시아를 아까시나무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대신 아카시아는 콩과에 속하는 아카시아속 나무를 통틀어 두루두루 부르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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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발하여 피어난 아까시나무꽃]

 

인간의 마음에 가시 돋친 게 자기보다 더 날카롭다는 걸 아는 듯 아까시나무는 이제 자기 소임은 모두 끝났다며 숲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어릴 때 잔가지마다 뾰족한 가시들이 가득했는데, 성장하면 가시가 나무줄기에서 더 이상 돋지 않는다. 어차피 숲에서 떠밀려 사라지는데, 더는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까시나무 꽃말은 ‘아름다운 우정과 청순한 사랑’. 아까시나무 꽃내음을 맡을 때마다 왠지 처음 손을 잡고 남산에 올라갔을 때 「과수원 길」 노랫말처럼 하얀 꽃 이파리가 눈송이처럼 날리며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풍긴다. 청순한 사랑은 그것이 실연으로 끝나야 완성된다. 물러설 때를 아는 아까시나무처럼.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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