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님아! 고단한 길 걸어갈 때, 내가 도우리다.]
태재고개 신갈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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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5-01 11:21본문
불곡산은 분당구 정자동, 구미동 주거지역의 야트막한 뒷산이라 사람들이 마실 삼아 가볍게 오르내린다. 하지만, 불곡산 능선의 숲길은 검단지맥의 어엿한 한 구간으로서, 하남시 검단산까지 산줄기가 이어지며 한강까지 뻗쳐진다.
검단지맥은 한남정맥과 맞닿으며, 한남정맥은 속리산에서 안성 칠장산, 광교산, 백운산, 관악산,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진 산줄기다. 만약 불곡산에서 시작하여 검단지맥을 따라 걷다보면 한남정맥을 타고 속리산까지 이르고, 계속 걷다 보면 소백산을 거쳐 백두대간과 만난다. 백두대간 산줄기는 태백산과 설악산, 그리고 삼팔선을 거침없이 넘어 금강산과 두류산을 잇고 마침내 백두산에 다다른다. 동네 가까운 야산의 숲길 같아 보이지만, 이래 봬도 장대한 백두대간을 오르는 마중 길이 된다.
백두산으로 연결된 숲길이지만, 불곡산에서 대지산 방면 능선은 완만한 숲길이라 걷기 편하다. 그래서 옛적부터 경상도, 충청도 영남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 이 숲길을 자주 이용했다. 오늘날 이 길은 영남길로도 불리며, 경기도 옛길로 관리되고 있다. 이 옛길은 선비뿐만 아니라 보부상도 자주 이용하여 한양으로 봇짐을 메고 오갔다. 장돌뱅이라 불린 보부상은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했기에 불곡산 숲길처럼 쉽고 편한 길을 골라 다녔다.
과거엔 일반 백성들이 땅에 얽매여 있을 때, 조선 팔도를 누비는 보부상들은 산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자유인이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어봐도 장돌뱅이는 전국을 유람하는 집시 같다. 작품에서 허 생원이 산허리를 돌 때마다 보는 풍경은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산과 강은 금수강산으로 숨이 턱 막힐 광경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장돌뱅이는 정작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부지거처 하며 팔도를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신세였다. 장돌뱅이가 부르던 노래에는 무거운 등짐 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텃세한테 괄시받고, 결국 어느 산속에서 까마귀밥이 되는 신세를 한탄한다.
보부상이 걸었던 불곡산 영남길은 신갈나무 천지다. 그리고 오래 걷는 보부상에게 신갈나무만큼 유용한 나무도 없다. 신갈나무 잎은 보부상 짚신 밑바닥에 딱 들어맞았다. 신갈나무 잎이 발 모양과 비슷한 달걀 모양이고 짚신에 쏙 들어갈 만큼 적당하다. 여러 장 겹쳐 짚신 위에 깔아놓으면 푹신하다.
![20250501[신발 깔창으로 쓰여 신갈이나무로도 불렸던 신갈나무].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01111557_etlrshyy.jpg)
[신발 깔창으로 쓰였다고 신갈이나무로 불린 신갈나무]
잎이 헤지면 사방에 자라난 신갈나무 잎을 따서 갈아 넣으면 그만이니 가성비도 좋다. 그래서 짚신 밑바닥에 깔창 대신 넣었다 하여 신갈이나무로 불리다가 신갈나무가 되었다.
신갈나무와 비슷한 떡갈나무와 비교하자면 떡갈나무는 도토리깍정이에 털이 많고, 신갈나무는 털 없이 모자처럼 매끈하게 딱 달라붙었다. 그래서 떡갈나무는 덥수룩한 비늘이 있는 갈나무라는 뜻의 덥갈나무에서 왔다고도 한다. 신갈나무처럼 깍정이에 털 없이 밋밋한 도토리는 졸참나무와 갈참나무가 있다. 하지만, 두 나무는 잎자루가 길다. 사실 나무를 그리 분류하는 것도 사람을 기준으로 나눈 것일 뿐이다. 숲에선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교잡도 흔히 있는 일이라서 두 나무의 특징이 서로 엇갈린 나무도 많다. 그런 나무를 떡신갈나무라고 부른다. 신갈나무가 졸참나무와 섞이면 물참나무로 부른다. 그럼 떡신갈나무와 물참나무 교잡종도 이름이 있을까?
자연은 연속적인 스펙트럼선에서 보이는 것이지, 무 자르듯 나뉘지 않는다. 사람이 식물을 바라보는 눈높이에 따라 분류하다 보니 그런 것이지, 산에서 신갈나무잎으로 떡을 싸든 떡갈나무잎을 따서 신발 깔창으로 삼든 그게 무슨 시빗거리란 말인가!
![[포맷변환]20250501[신갈나무 줄기, 나뭇잎, 도토리].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01112007_rfannbus.jpg)
[ 신갈나무 줄기, 나뭇잎, 도토리]
신갈나무는 우리나라 산 능선에 분포하는 산림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산 비탈면은 가팔라 비가 오면 흙의 양분과 수분이 금세 씻겨나가 비옥하지 않다. 게다가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나무엔 그리 좋은 생육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신갈나무는 이런 불리한 환경에도 꿋꿋하게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는다.
신갈나무는 활엽수 중 수목한계선이 가장 높다. 산을 오를수록 신갈나무만 남아 군락을 이루고, 우리나라 숲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학명도 추운 몽골 지역에서도 잘 자란다고 하여 ‘mongolica’가 들어갔다. 신갈나무를 돌참나무라고도 부르는 이유도 척박한 곳에서 더디게 자라지만, 나무가 치밀하여 마치 돌처럼 단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인함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나온 책이 바로 '신갈나무 투쟁기'다.
‘신갈나무 투쟁기’ 저자 차윤정, 전승훈 교수는 신갈나무 작은 종자 하나가 얼어붙은 땅을 헤집고 싹을 틔우며 잎을 만들고, 뿌리를 키우고 꽃과 열매를 만드는 일 어느 것 하나 거저 되는 법이 없다며, 이런 모든 일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살 떨리는 치열한 신갈나무의 투쟁사라고 말한다.
![20250501[칼바람 부는 능선에 자란 신갈나무].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5/20250501111609_avwtqcia.jpg)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신갈나무]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