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겉은 거칠지만, 속은 부드러운]
검단산 물박달나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 25-04-29 09:45본문
성남과 광주의 시 경계 검단산과 망덕산을 잇는 산길은 완만한 것 같아도 굽이굽이 굽고 오르락내리락한다. 봄맞이 삼아 부담 없이 걷는다지만, 은근히 사람 힘을 빼놓는다. 어쩌면 그런 수고로움이라도 있어야 망덕산 정상에서 상대원동 시가지가 더 광활하고 시원하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하늘 아래 산 위 풍경을 찬찬히 훑어보니,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알 만도 하다. 아마 정상에서 세상살이를 관조하듯 내려다보기 위함이 아닐까? 높은 곳에서는 작은 골목마다 이익을 구하며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웅장하게 솟은 산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그 사이 인간이 서 있다. 그저 시원한 바람만 불어 구름과 사람의 마음만 움직여 주면 될 뿐이다.
망덕산을 기점으로 동쪽에는 광주시 두리봉이 나오고 그 산을 거쳐 군두레봉, 장작산, 희망봉, 용마산을 지나 마지막 검단산까지 이르러 한강과 맞닿는다. 이 숲길이 바로 한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검단 지맥이다. 서쪽으로 가면 안성 칠장산에서 김포 문수산까지 이어진 한남정맥이라는 산줄기에 이르고, 계속 나아가면 백두대간의 속리산과 만날 수 있다. 그 산길을 타고 가면 태백산을 거쳐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갈 수 있다. 동네 뒷산이라도 언젠가 이 길을 걸어 백두산까지 당도하겠다는 뜻을 품을 수도 있겠다.
![20250429[망덕산 정상].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4/20250429094239_adrklhpc.jpg)
[망덕산 정상. 물박달나무 군락지]
망덕산에서 검단산으로 가는 숲길 식생 대부분 참나무류 낙엽활엽수다. 신갈나무, 떡갈나무가 우점종으로 키 큰 나무들이 쑥쑥 잘 자라 숲이 무척 우거졌다.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다.
그중 물박달나무는 키가 참나무 갈잎보다 더 높이 자랐다. 망덕산 기슭은 용케 물박달나무가 참나무를 제치고 군락을 이룬다.
산에서 자주 만나는 물박달나무는 한번 보면 멀리서도 금세 알아본다. 물박달나무 껍질은 얇은 종잇조각처럼 겹겹이 붙어있다. 다른 나무는 산길을 걷다가 종종 쓰다듬기도 하는데, 물박달나무는 껍질이 하도 지저분하게 붙어서 손이 더러워질까 건들지도 않는다.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와 개박달나무와 같이 자작나무 무리에 속한다. 자작나무 껍질이 얇은 종이처럼 벗겨진다면, 물박달나무는 두꺼운 비늘 조각이 너덜너덜해 툭툭 떨어진다. 그리고 자작나무 표피가 하얗고 윤도 나서 예쁘게도 보이는데, 반면 물박달나무는 그냥 짙고 어두운 껍질이 물에 퉁퉁 불은 종잇조각처럼 나무에 덕지덕지 붙은 모양새다. 영어로 물박달나무를 black birch로 부르거나 paper birch로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물박달나무는 박달나무 중 나무에 물이 많은 박달나무란 뜻이다. 그래서 고로쇠나무처럼 봄에 수액을 뽑아낼 수 있다. 참고로 고로쇠나무 이름은 뼈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로 골리수(骨利樹)가 어원이다. 가끔 망덕산을 넘나들 때 무릎뼈가 시큰둥하고 성치 못하다고 느끼면 물박달나무가 달리 보여 입맛을 다시기도 한다.
수액은 뿌연 색을 띠면서 달짝지근하고 시원하여 추운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식수로 유용하다. 더구나 칼슘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고 몸속 노폐물도 제거해 체력 회복에 좋다. 나무에 수액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밤에 온도가 떨어지면 나무가 땅속에서 물을 흡수하여 나무에 물을 채우고 낮에 기온이 오르면 물이 팽창하는데, 이때 나무에 상처를 내면 물의 압력 때문에 수액이 분출된다.
![20250429[물박달나무].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4/20250429094317_bswdiqug.jpg)
[물박달나무. 겉은 거칠지만, 속은 보드랍다.]
박달나무는 물박달나무와 달리 껍질이 흑회색으로 윤이 나고 벗겨지지 않고 매끄럽다. 원통형 열매도 박달나무는 위로 향하지만, 물박달나무는 아래로 향해 있다.
박달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나무로 물속에 가라앉을 정도며, 옛적부터 방망이나 홍두깨로 쓰였다. 주변에 흔하게 자랐지만, 지금은 산에서 쉽게 볼 수 없다. 박달나무는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왔다고 알려진 나무다. 단수는 박달나무란 뜻으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 역시 박달나무에서 유래했다. 나무는 고대사회에서 그 자체로 인간을 이롭게 하는 또 다른 신이었다. 그중 박달나무는 단군이 나라를 만들며 밝은 땅을 보여주었다고 하여 밝달나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수(神樹)였다.
물박달나무는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자작나무와 함께 잘 자란다. 물박달나무가 추운 고산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저분하고 덕지덕지 붙은 나무껍질 덕분이다. 여러 겹으로 둘러싸는 나무껍질에는 기름 성분이 많아 나무 수분이 추위에 얼어붙지 않도록 보호한다. 또한 한낮 강한 햇볕에도 나무가 수분을 잃고 마르지 않게 도와준다.
물박달나무 껍질은 지저분하지만, 간혹 껍질이 벗겨질 때 나무 보드라운 속살이 드러날 때가 있다. 세상에 어느 나무가 이리 부드럽고 고운 빛을 띨 수 있을까? 옛 속담에 ‘반드럽기는 삼 년 묵은 물박달나무 방망이’란 말처럼 물박달나무는 보기와 달리 매끈하고, 반들반들하다.
어쩌면 지저분한 겉껍질에 부드럽고 매끈한 속살을 일부러 누추하게 감추었구나 싶기도 했다. 단단한 목재로도, 나무껍질로도 그리고 수액으로 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나무라지만, 사실 나무에 전혀 이롭지 못하다. 때론 아름다움이 축복이 아닌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지저분한 나무껍질 물박달나무를 볼 때마다 드는 단상이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