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군인처럼 험상궂은 가시나무]
남한산성 쥐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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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4-24 13:03본문
성남은 군사도시다. 군사도시라면 최전방에 있는 파주, 연천이나 미군기지가 있는 동두천, 평택, 또는 육군사령부가 있는 계룡을 생각하기 쉬운데, 성남도 군사도시로서의 위상이 만만치 않다.
역사적으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는 한강에서 탄천 따라 이어지는 드넓은 평야에서 군사들을 훈련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당나라와의 일전을 준비하며 산 높은 곳에 성을 쌓기도 했다. 성 둘레가 무려 8㎞에 이르러 낮이 밤보다 길다는 뜻의 주장성이 지금의 남한산성이며, 당시에 최대 규모의 산성이었다.
![[포맷변환]20250424[쥐엄나무 남한산성].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4/20250424130042_vpdchqib.jpg)
[전쟁의 상흔이 남은 남한산성]
고려에 이르러 몽골군이 한반도에 쳐들어왔을 때는 이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피난하고 내륙에 변변한 군대가 없었던 시기, 성안의 사람들은 합심하여 남한산성을 수십 겹 포위하며 쳐들어오던 몽골군을 기어이 물리치기도 했다.
조선 시대도 병자호란이 반발할 때 인조 임금은 남한산성에 머물며 청나라에 대적하였다. 물론 항전 끝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스스로 성문을 열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청나라 군대가 성을 함락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남한산성은 천혜의 군사적 요새였으며, 이를 두고 심상규의 ‘좌승당기’에서는 ‘산의 험한 형세는 앉아서 싸우지 않아도 이기지 않을 수 없는 땅’이라고 하였다. 그 이후로 조선말, 남한산성은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전국의 의병들이 모여서 봉기하던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성남이 군사도시로서 인연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위례신도시 개발 이전까지 육군행정본부 및 특전사 사령부가 있었고, 육군교도소가 이천시로 이전할 때까지 남한산성에 있었다. 지금도 산기슭마다 여러 부대가 소재하고 있으며, 가끔 사격 훈련하느라 총소리를 듣는다.
숲길을 걷다 보면 부대 주변으로 깜짝 놀라는 것은 총소리 말고도 무성한 덤불 속에 감춰진 녹슨 철조망을 볼 때다. 숲길 경계는 군부대 영내로 진입하지 못하게 쇠가시가 촘촘한 철조망이 있다. 멋모르고 콧노래 부르며 덤불 잎사귀를 손으로 훑고 지나갔다가는 철조망에 피부가 긁혀 파상풍에 걸리기에 십상이다.
숲길 한쪽에 철조망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다면, 반대편 길섶은 가시 돋친 찔레꽃이 자라기 일쑤다. 이래저래 숲길에서 살펴볼 것이 참 많다.
가시 돋친 나무로는 들장미 말고도 아까시나무도 있다. 아까시나무 줄기의 가시는 새 줄기에서 돋아난 잎 바로 아래에 있는 턱잎이 변한 것이다. 줄기 껍질이 가시로 된 나무가 있다. 개두릅나무라고 부르는 음나무다. 가시가 줄기마다 수없이 달려 보기에도 험상궂다. 엄해 보여 엄나무라고도 부르며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심어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옛 남한산성 교도소 자리에 자라는 쥐엄나무 가시를 본 이후로 음나무나 아까시나무 모두 귀여운 턱잎으로 보인다.
![[포맷변환]20250424[엄나무와 쥐엄나무].jpg](http://www.powermedia.co.kr/data/editor/2504/20250424130120_lfibziwv.jpg)
[엄나무(음나무) 가시(左)와 쥐엄나무 가시(右)]
우리나라가 원산지라지만, 쥐엄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기괴하여 무척 낯설었다. 나무줄기에 난 가시가 그냥 그런 가시가 아니었다. 아예 범접조차 하지 못하게, 날카로운 칼날을 줄기에 다닥다닥 꽂아 놨다. 다른 나무들의 가시는 대부분 턱잎이나 껍질이 변한 것인데, 쥐엄나무는 숫제 나뭇가지가 가시가 되어 창날처럼 길고 날카롭다.
그래서 예전에는 나무줄기에 돋아난 굵고 기다란 가시가 날카로운 창날과 같다고 하여 조협나무로 불렀다. 이후 부르다가 편한 발음하기 편하게 주엽나무로 변하고, 음운 변화는 계속 일어나 주염나무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쥐엄나무로 정착되었다. 옛 속담에도 인색한 사람이 너무 심하게 굴 때 ‘쥐엄나무 도깨비 꼬이듯’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쥐엄나무는 우리에게 험상궂은 나무로 가까이 있었다.
쥐엄나무 열매도 가시처럼 희한하게 생겼다. 같은 콩과식물인 아까시나무 꼬투리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한 뼘이나 되고 마치 뱀이 몸을 비비 꼬다가 말라 비틀어 죽은 모습이다. 그래도 생긴 것과는 달리 열매 안에는 꿀처럼 달콤한 즙이 가득하다. 그래서 동물들이 쥐엄나무를 보면 달려들어 뜯어 먹는데, 어쩌면, 쥐엄나무 가시가 그렇게 송곳날처럼 매섭게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쥐엄나무와 꼭 닮은 나무가 서양에도 있는데, 캐럿나무(Carob tree)로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캐럿나무 꼬투리에 들어있는 씨앗 무게가 모두 0.2g으로 똑같다. 그래서 옛날부터 보석상들이 캐럿의 씨앗으로 보석의 무게를 재었으며, 지금까지도 캐럿이 보석의 무게 단위가 되었다. 다이아몬드 1캐럿의 무게가 캐럿나무 1개의 씨앗 무게와 같은 이유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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