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반딧불이와 함께 불 밝히는 생강나무]
발화산 생강나무 군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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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7-24 14:46본문
성남 끝단에서 의왕시와 용인시를 가르는 고개 이름이 바라재다. 한양에 갈 때 산 사이 지름길 바라재를 넘나들었다. 고개 좌측 산은 의왕시 바라산(428m)이고 우측이 성남시 발화산(425m)이다.
바라산은 망산으로도 불린다. 뜻은 바라볼 망(望)이란 글자에서 알 수 있듯 어딘가를 바라보는 산다. 그 어딘가는 바로 고려의 수도 개경이다. 조견 선생이 고려가 망할 때 망산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며 슬퍼했다고 한다. 국사봉, 망경대도 조건 선생이 올랐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인데 공교롭다.
발화산은 반딧불이 많이 살고 있어 불난 것 같다고 하여 발화산(發火山)이다. 지금도 인근에는 반딧불마을이 있고 불이 깃든다는 불깃재도 있다. 반딧불 덕분에 산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 같다고 발화산(發華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화산을 우담산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바라산과 운율을 맞춰 우담바라란 말을 만들고 싶었는가 싶다. 아니나 다를까! 숲에서 자연을 소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사가 이런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바라산 자연휴양림에서 숲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삼천 년에 한 번 핀다는 꽃 우담바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풀잠자리알보다 반딧불에서 유래한 이야기가 더 나을 듯싶다.
숲해설사는 서먹서먹한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늘 궁리한다. 그중 데면데면하던 사람들 눈을 호기심에 반짝 뜨게 만드는 단골 메뉴가 바로 생강나무다.

[발화산 숲길 생강나무]
숲해설사는 숲길을 걷다 무심코 나뭇가지 하나 툭 부러뜨려 보온병에 넣는다. 사람들은 왜 그러지? 하는 궁금증만 마음에 담는다. 묻기에는 별로 살갑게 굴고 싶지 않다. 걷느라 다리 아플 때쯤 숲 해설사는 보온병에서 찻물을 내어 준다. 진한 생강차가 담겨 있다. 사람들은 생강차를 언제 다 준비했냐고 묻는다. 해설사는 그제야 오는 길에 가지 하나 툭 꺾은 것이 생강나무고, 생강나무 나뭇가지의 향이 우러나온 것이라고 한다. 항상 같은 멘트.
하지만, 처음 듣는 사람들은 놀라 탄성을 지른다. 해설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차나무가 자라지 않는 추운 지방에서는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비싼 차 대신 향긋한 생강나무로 차 문화를 누렸다고 말한다. 야산 이름 없는 나뭇가지인 줄 알았는데, 그 가지에서 생강 향기가 나서 생강나무라는 이름이 있다는 말에 사람들은 나무를 다시 보게 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숲해설사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며 졸졸 따라다닌다.
생강나무를 한번 만나면 그 후론 다시는 잊지 못한다. 생강나무를 알고부터 산에 오르면 항상 생강나무를 먼저 찾는 버릇이 생겼다. 생강나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반겨주고 숲이 주는 즐거움마저 깨우쳐준다. 누군가 나무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는 시금석으로 단연코 생강나무를 얼마만큼 아는가이다.
숲에서 이른 봄 생강나무 노란 꽃이 필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진달래 붉은 꽃이 아직 꽃눈 속에 있을 때 생강나무는 노란 꽃송이를 팝콘 터뜨리듯 팡팡 피운다. 앙증맞은 노란색 꽃송이들. 황매를 닮았다고 황매목이라고도 부른다.
생강나무 노란색 꽃은 산수유나무꽃과 닮았다.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있다. 생강나무꽃은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피는 암수딴몸이고 수꽃이 암꽃보다 다소 크다. 꽃대 없이 나뭇가지에 바짝 붙은 꽃은 뭉쳐 핀다.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은 6장이다. 반면 산수유는 암술과 수술이 한 꽃에 달리며 꽃술이 쭉 돋아있다. 꽃대가 있고 꽃이 하나씩 피며 꽃덮개가 4장이다.

[이른 봄 생강나무꽃 (발화산)]
봄에 생강나무 꽃망울이 그랬던 것처럼 가을에는 잎사귀가 산을 노랗게 물든다. 검은 열매를 가지마다 매달고.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확연히 달라지는 시간이 왔다. 산수유는 새빨간 열매를 맺고, 생강나무는 검은 열매를 맺는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잎사귀와 열매가 다채로운 색을 띠니 가을 생강나무숲은 단풍나무 못지않게 즐겁다.
생강나무는 발화산뿐만 아니라 우리 산야 지천에서 자란다. 가을 되면 산에서 생강나무 열매를 주우며 다니곤 했는데, 정선 아리랑에도 떨어진 동박(생강나무 열매)을 줍다가 임을 만나고 임을 그리워한다는 가사가 있다. 생강나무 열매로도 밤에 불을 밝히는 등불용 기름으로 많이 쓰였다.
남쪽에는 동백나무가 있어 기름을 채취했지만, 중부 이북 추운 지방에서는 생강나무가 동백나무를 대신하여 기름을 짜는 데 유용하다. 그래서 종종 산동백나무라고 부른다. 김유정 작가의 ‘봄봄’에서 나오는 노란 꽃 동백은 바로 생강나무를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발화산은 반딧불이가 불을 밝혀서 발화산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지천으로 자라는 생강나무 열매로 불을 밝힐 수 있다고 하여 발화산이 아닌가 싶다. 여름에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을 모으고, 가을에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고, 겨울에는 쌓인 눈에 반사된 달빛으로 등불을 삼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과히 형설지공이란 말이 발화산에서도 나왔을 듯싶다.
생강나무의 꽃말은 수줍은 고백. 김유정의 소설 '봄봄'에서 주인공을 사랑하는 점순이는 생강나무(동백나무) 아래에서 엄청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주인공이 점순이를 여우 새끼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실, 생강나무 꽃말은 수줍은 고백인데 말이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