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선운사 미륵불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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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10-29 09:57본문
전북 고창에서 행사가 있었다. 일정은 고창 유스호스텔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점심에 마무리되는 것으로 상경하기 전에 반나절의 여유가 있었다. 그 자투리 시간에 고창군 어디를 둘러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였다.
먼저, 고창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백 기의 고인돌이 고창읍 한데 옹기종기 모여있다. 한두 시간이면 고즈넉하게 산책하면서 고인돌을 둘러볼 수 있다. 고창을 방문한 때가 5월이라, 그때 고창의 드넓은 초록빛 보리밭에서는 청보리밭 축제가 한창이었다. 녹음이 짙어지는 시절, 푸릇푸릇한 들판에 더 청한 빛깔의 보리밭이 이국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또한, 고창군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라 호남의 내금강이라는 아름다운 선운산도 꼭 들러봐야 할 것 같다. 그 밖에도 모양성으로 불리는 고창읍성이 조선시대 모습 그대로 온전하게 남아있다니, 반나절 성곽을 한 바퀴 돈다면 고창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많은 볼거리 중 무엇을 택해야 할까? 이 지역에 다시 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신중해졌다. 살면서 처음 와본 곳이니, 남은 생에 다시 온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지구에서 허락된 시간 중 반절 훨씬 넘게 써버렸기 때문이다. 서글프지만, 그래서 모든 순간이 더욱 귀하다.
문득 내가 예전부터 그토록 선운산에 오고 싶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젊은 시절, 내가 만약 첫 소설을 쓴다면 그 제목은 바로 ‘미륵불 옴파로스’ 였다. 거기에 생각이 닿자 나는 곧장 선운산으로 향했다. 백제 위덕왕 검단선사가 창건한 웅장한 천년고찰 선운사도 그냥 지나치며 산 정상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청보리밭도, 고인돌 선사유적지도 지나쳤다. 오로지 선운산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

[천년고찰 선운사]
도솔암을 향한 산길은 푸릇푸릇한 잎과 들꽃의 향기로 가득했다. 수목마다 상쾌한 향기를 내뿜으니, 수고로운 마음은 한결 누그러졌다. 산길 아래 저 멀리 바다가 아득히 보이는 풍경은 사람의 마음을 씻어내릴 만큼 수려했다. 선운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었건만, 여러 기암괴석과 고봉마다 능선이 겹겹이 쌓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가까운 듯 먼 듯 산 아래에 바다가 보이니, 산과 바다의 풍경이 조화로워, 마음속 어지러운 번뇌는 이내 씻겨 내렸다.
드디어 숲길 끝에서 도솔암으로 오르는 바위에서 절벽에 새겨진 미륵불을 보았다. 선운산 마애석불은 높이가 무려 15.6미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마애불이다. ‘마애(磨崖)’란 절벽이나 바위에 새긴 조각을 뜻하니, 마애불이란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말한다. 부처님이 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시니, 이 산은 예로부터 도솔천의 미륵불이 머문다는 뜻으로 ‘도솔산’이라 불렸다. ‘선운산(禪雲山)’이라는 이름 또한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니, 산 자체가 불심으로 충만한 곳이다.
거친 세월의 흔적 속에서 장엄함과 비장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 거대한 불상 앞에서 큰 바위가 숨을 쉬는 듯했다. 고요한 세상에서 나도 숨이 멈췄다. 백년 전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마침내 미륵불에 섰을 때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미륵불의 배꼽에서 혁명의 기운을 품고 ‘비결’을 찾고자 왔을 터이다.

[혁명의 기운을 담은 선운산 절벽]
선운산 마애불은 미륵불이다.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한 뒤 세상이 타락할 때, 마지막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다. 그래서 미륵신앙은 핍박받고 천대받는 이들 속에서 퍼져나갔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염원이 그 신앙의 근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혼탁할수록, 권력의 억압과 수탈이 심할수록, 미륵신앙은 더욱 강하게 피어났다. 조선시대에 특히 천대받던 서북지방과 호남지방에서 미륵신앙이 뿌리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서북지방의 홍경래의 난이 진압되고 세월이 한참 흐른 후 다시 미륵사상이 호남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동학의 기운이 남도의 땅을 뒤흔들고, 세상을 바꾸고자 염원하던 민중들은 고창 선운산 도솔암 아래 절벽, 거대한 석불에 모여들었다. 바로 미륵불 배꼽 속에 나라의 운명을 바꿀 비결이 들어 있다는 소문에, 그 비결을 얻어 세상을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모두의 긴장과 침묵 속에 드디어 손화중의 동학도들은 미륵불의 배꼽에서 ‘비결’을 꺼냈고, 이후, 전국의 핍박받던 농민들은 미륵 세상을 꿈꾸며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갔다.
그토록 염원하던 도솔암 마애불 앞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다가 참배하고 기와 시주를 하고 하산하였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 바다 쪽에서 부는 바람이 살짝 차가웠다. 정확히는 산과 바다의 경계라 산풍일 수도 있겠다. 내려오면서 문득 ‘비결’이란 것이, 그저 미륵불의 배꼽에 숨겨졌던 글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 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도사린 믿음과 용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종하는 신앙과 저항하는 혁명이 한데 얽혔던 그 시대 혼란 속에서, 미륵은 단순한 구원의 상징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의 열망이었었다.

[선운산 마애여래좌상]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