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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우리도 팽나무가 있었으면]

마을의 사랑방 정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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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8-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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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수진동 커뮤니티센터 건립공사 감독 업무 중 옥상 조경에 대한 실정 검토 보고서가 감리단으로부터 접수됐다. 애초 계획은 옥상층에 자작나무 다섯 그루와 여러 종류의 초화류를 심어 어린이 학습장으로 꾸미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고서는 화초류가 나중에 관리가 어렵고, 옥상층의 인공지반에서 자작나무 생존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역 인구 분포나 이용도를 고려할 때 식물 학습장보다 휴게 공간이 적합하다고 하였다.


커뮤니티센터는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로 주차장과 문화집회시설을 함께 갖춘 복합 공공건축물이다. 현장 실사를 겸해 신축공사장에 들렀다. 옥상층에 오르니 감리단이 신축 공사 현장보다 주변 동네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주택만 다닥다닥 붙어있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삭막한 모습이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한때 이곳은 영장산 남쪽 산기슭으로 숲이 우거진 동네였다. 수진동이라는 이름도 세종대왕 아들 평원대군 묘지와 관리실인 수진궁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영장산 기슭부터 단대천까지 울창했던 수목들은 이곳이 서울 위성도시로 조성되면서 모조리 베어졌다. 이후 도시는 발전했지만, 그때 잃은 풍경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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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커뮤니티센터 옥상에서 본 마을 전경 (수진동)]

 

정든 고향을 떠나 성남에 정착한 사람들의 기억 속 고향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아마 논밭이 펼쳐진 마을 어귀에 커다란 나무가 있고, 그 나무를 정자로 삼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는 소꿉친구들과 그 나무를 빙빙 돌며 뛰어놀고, 나이가 들면 해 질 무렵 하루 노동의 시름을 이웃과 술잔 기울이며 달랬을 것이다.

 

하지만, 수진동에는 정자나무는 고사하고 번듯한 나무 한 그루조차 보기 힘들다. 문득 이 마을에도 고향에서 마을 사랑방이 돼주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나무가 드리운 그늘이 널찍하여 사람도 때로는 새들도 쉬어갈 수 있는 그런 넉넉한 나무가.


예전에 거제도를 찾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을 쪼개 들른 곳이 청마 유치환 시인의 기념관이었다. 덩달아 집 옆 팽나무까지 보게 되었다. 수백 년 묵은 팽나무는 시인이 태어난 방하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었고 마을을 상징하는 이정표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팽나무 나뭇잎이 소리 없이 나풀거리는 모습은 시인이 노래하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었다. 

 

처음 마주한 팽나무 인상이 너무도 강렬하여 나무 곁에서 두고두고 머물렀다. 고향이라면 이런 나무 한 그루쯤 마을을 지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거제도 방하마을뿐만 아니라 팽나무는 여러 마을 입구에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팽나무 굵은 가지를 원숭이처럼 오르내리며 놀았고, 여름에는 열매로 팽총을 만들어 놀았다. 가을이 되면 달콤한 열매를 따 먹을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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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유치환 시인 기념관 앞 팽나무]

 

어둑어둑 날이 저물면 팽나무 아래는 또 다른 풍경이 된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엔 어른들이 모이는 실비집이 된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들이켤 때 나무에 걸터앉으면 목로주점, 서서 마시면 선술집이다. 팽나무야말로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의 사랑방이자 이정표였다.

 

사람만이 아니라 새들도 즐겨 찾는다. 팽나무 열매가 달콤하기 때문이다. 학명에 celtis는 ‘단맛 나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라는 뜻을 가진다. 팽나무가 있으면 도심 속에서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수정커뮤니티센터 옥상에는 결국 자작나무 대신 팽나무를 심었다. 

 

뿌리가 잘 뻗도록 흙 깊이를 확보해 마운딩 플랜트를 도입했고, 주변에는 조팝나무와 화살나무 같은 관목을 심었다. 땅을 덮는 돌단풍과 애기기린초, 수호초도 함께 어우러지게 했다. 바닥은 시멘트 블럭 대신 화강석 판석으로 마감해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명실상부 이 마을에 작은 도시 숲이 탄생한 것이다.

 

팽나무 이름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열매가 ‘팽’ 하고 튀어 날아가서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팽이버섯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또 ‘패다’에서 어원이 나와 ‘이삭이 패고 꽃이 피는 나무’라는 뜻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한자 표기는 ‘팽목(梧)’ 또는 ‘박수(朴樹)’로, 음을 딴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


오래 사는 팽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었다. 남자 무당을 박수무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팽나무가 한자로 박수(朴樹)라고도 하여 팽나무 아래에서 굿을 하기 때문이다. 팽나무는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신성한 신목으로 있었다.

 

팽나무는 땅을 하늘과 이어주지만, 바다와도 이어준다.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닷배가 들락거리는 포구에 팽나무가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바다에서 불어오는 갯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많이 심었다. 어부들은 포구에 아름드리로 자라난 팽나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면 배를 나무에 묶어두곤 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팽목항도 항구에 팽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예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창원시의 팽나무가 화제였다. 거기도 팽나무는 바닷가 근처 바다와 땅이 맞닿는 지점에 자랐다. 드라마가 인기를 끄니 문화재청에서 드라마에서 설정상 천연기념물로 설정된 팽나무를 진짜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수령이 약 500년이 넘고,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온 노거수인 만큼 진작 되고도 남았다. 우영우 변호사가 극 중 대사를 빗대어 팽나무를 평가하자면, 

 

“팽나무는 볼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너무 멋진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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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진 팽나무]

 

뒷이야기: 팽나무를 심은 수정커뮤니티센터는 성남시 제3회 하늘정원상 옥상녹화 우수건축물로 선정되었다. 도시 품격을 높이고, 미세먼지 저감과 열섬현상 완화효과를 볼 수 있는 녹색공간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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