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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소나무, 떠남을 받아드리는 숲의 철학]

늘푸른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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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9-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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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서 출발해 성남누비길 7개 구간을 지나 인릉산으로 내려설 때, 숲길이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듯한 나무가 있다. 숲 내내 숱한 나무들이 서사의 전개를 맡았다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금강소나무다.

 

짙푸른 솔잎을 우뚝 이고 선 인릉산 금강소나무는 마치 태백산맥의 깊은 능선을 옮겨 놓은 듯 수십 미터 하늘로 치솟아 늠름하다. 붉은 금빛이 번지는 줄기는 해질녘이면 더욱 황홀하다. 거친 능선 바위틈에서 구부러져 자라는 여타 소나무와 달리 낮은 산 끝자락에 곧게 뻗은 자태는 유난히 인상적이다.

 

몇 해 전 산림청 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 1위가 단연 소나무였다고 한다. 요즘 아파트 단지마다 품격을 높인다며 소나무를 심지만, 그 사랑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깊게 스며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금줄을 치고 솔가지를 매달았고, 사람들은 소나무 숲을 거닐며 솔가지를 생활도구로 쓰다가 죽을 때는 소나무 관에 누웠다. 묘지에는 도래솔을 심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지켰다. 태어남에서 죽음까지 소나무는 삶의 의례를 품은 나무였다.


우리나라 숲에서 소나무가 참나무와 무리와 함께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넘는다. 두 나무 모두 사람에게 친숙하여 참나무는 진짜 좋은 나무라는 뜻에서 참나무라 부르고, 소나무는 나무 중에서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솔이라고 불렀다. 솔은 수리에서 온 말로 으뜸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거느릴 솔(率)로 쓰니 뭇 나무들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나무라는 뜻이다. 소나무는 한자로 송(松) 자를 쓰기도 한다. 나무 목(木)에 귀공자 공(公)이 합쳐진 글자로 나무 중 으뜸이고 다른 나무들을 거느릴 공자의 위엄을 갖는 나무가 소나무다. 


나무가 주는 이로움이란 무엇인가! 숲에서 자주 마주치는 참나무는 흔하다고 하여 잡목이라 부르고, 집 마당에 들여놓거나 따로 심지 않는다. 참나무는 그저 숲에서 돌봄없이도 잘 자라 아궁이에 불을 땔 장작으로 요긴하며, 가뭄이 들 때 수북하게 떨군 도토리 주워 굶주린 배를 채우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반면 소나무는 옛 선비들에게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푸르름을 잊지 않는다고 하여 절개의 표상으로 삼았다. 또한 십장생의 하나로 가문이 번창하고 집안사람들이 모두 만수무강하기를 기원하며 마당 안에 두고 감상했다. 간혹 소나무를 목재로 사용한 경우라도 궁궐을 짓는 데나 썼다. 이런 귀한 소나무를 일반 백성은 함부로 베지 못했다. 금송 정책 때문에, 땔감으로 소나무를 자르거나 초근목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내면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기 일쑤였다. 더 나아가 배고픈 백성이 산에 들어가 솔잎까지 따먹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소나무가 자라는 숲은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금산을 시행했다. 얼마나 가혹했던지 다산 정약용 선생은 ‘승발송’이란 시에서 소나무로 말미암아 관리가 가혹한 정치를 펼쳐 백성의 고통이 극심했으며, 이에 스님이 어린 소나무를 보면 족족 뽑아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포맷변환]20250916[솔방울이 커가는 모습.jpg

[솔방울의 일생]

 

예전 헐벗은 산에 소나무는 많았다. 참나무는 땅이 비옥하고 물기가 있는 환경에서 잘 자란다. 반면 소나무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예전에 소나무가 참나무보다 많았다는 뜻은 그만큼 우리 숲은 황폐해지고 민둥산이었다는 뜻이다. 

 

이후 사람들은 숲에 대해 소중함을 깨닫고 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산에 소나무만 듬성듬성 있던 맨 흙바닥에 풀이 자라더니 키 작은 관목도 하나둘 자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더 흘러 바람에 여러 씨가 날아오고 새들은 어디서 열매를 물어오더니 숲에는 온갖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산이 더욱 푸르러질수록 소나무는 설 자리를 잃는다. 참나무는 소나무 그늘에서도 자랄 수 있지만, 소나무는 참나무 그늘을 견디지 못한다. 가을이면 참나무의 낙엽이 두텁게 쌓여 솔방울은 흙에 닿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지고, 설령 싹이 트더라도 햇볕을 많이 필요로 하는 어린 소나무에게 잎이 크고 무성한 참나무는 치명적인 천적이 된다.

 

결국 소나무가 우거지던 숲은 세월이 흐르며 점차 참나무가 지배하는 숲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참나무 숲도 머지않아 서어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단풍나무처럼 한층 그늘에 강한 나무들이 차례로 자리를 이어받게 될 것이다.


20250916[소나무 군락지 (이수봉).jpg

[소나무 군락지 (이수봉)]

 

이제 소나무는 산 능선과 바위지대처럼 척박한 곳에서만 군락을 이룬다. 청계산 이수봉 능선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매년 예산을 들여 소나무를 관리하고 키 큰 참나무를 솎아내지만, 결국 소나무는 조경수처럼 ‘보여 주는 나무’로 남을지 모른다.

 

지구 온난화는 침엽수의 서식지를 더 좁히고, 재선충과 솔잎혹파리, 송충이 같은 병해충은 소나무의 운명을 더욱 위태롭게 한다. 송진이 많은 탓에 산불 위험도 크다.

 

보굿이란 우리말이 있다. 오래되고 굵은 소나무 줄기에 비늘 모양으로 덮여 있는 겉껍질을 말한다. 보굿이 낯설어지듯 솔방울도, 송진도, 솔잎이란 단어도 귀에 익지 않을 것이다.


예전 기록적인 강우를 기록했을 때 인릉산 금강소나무를 만나러 숲속에 들어갔다. 굵은 빗줄기와 거센 바람에 금강소나무는 기어코 뿌리째 뽑히고 굵은 줄기는 댕강 부러져 보기에도 고통스러웠다.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던 모습은 온 간데없었다. 서서히 떠나갈 줄 알았지, 이렇게 속절없이 허망하게 떠날 줄 몰랐다. 그 빈자리가 너무 컸다.

 

이제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나마 소나무를 회상하는 일만 남아있겠다. 

 

안녕! 이제 너를 놓아줘야겠다. 매우 그립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헤어질 때 헤어질 수 있는 것도 자연의 이치다.


20250916[폭우에 쓰러진 인릉산 낙랑장송.jpg

[폭우에 쓰러진 낙랑장송 (인릉산)]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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