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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여기서 만나지 않길 바라]

남한산성 호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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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9-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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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은 전란을 대비하여 북한산성 행궁, 강화도 행궁과 같이 건립한 궁으로, 병자호란 발발 시 인조가 몽진하여 47일간 항전한 곳이다. 전란 후 정조 시기에는 광주부와 수어청을 광주유수부로 통합하여 서울 남쪽 방어기지로 삼았고, 정문에 커다란 문을 설치했다. 행궁에 들어서면 처음 맞이하는 문으로 이름은 한남루다.

 

‘한강 남쪽에 있는 문’이라는 뜻으로 기둥마다 시구가 이어져 있다. 내용은 병자호란 당시 ‘비록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지 못할지라도 항상 그 아픔을 참고 원통한 생각을 잊지 말자’라는 것이다.


패전 후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 백성의 수는 육십만 명에 이르렀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엄동설한 북쪽의 혹한 속에 끌려가다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다. 설령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며 청나라 심양에 도착했다고 하여도 조선인들은 노예로 팔려 중국 각지로 끌려갔다. 혹독한 노예 생활을 견디지 못해 탈출도 했지만, 낯선 이국땅에서 길을 잃고 잡히어 형벌로 발뒤꿈치가 잘리거나 이마에 문신이 새겨지기도 했다. 


간신히 청나라에서 벗어나 도망쳐도 국경 근처 압록강에 빠져 죽거나 백두산의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천만다행으로 고향 땅에 이르렀다 해도 안심할 수 없었다. 조선은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끌려간 포로가 도망치면 즉시 잡아서 청나라로 되돌려 보내기로 약조했다. 만약 도망친 포로를 돌려보내지 못하면 도망친 포로 대신 다른 백성을 바쳐야 했다. 고향에서조차 일가친척의 냉대와 관군의 눈을 피해 숨어야 했던 사람들은 많은 수가 다시 붙잡혀 청나라로 끌려갔다. 

 

20250902[남한산성 성곽과 암문.jpg

[무너진 남한산성 성곽]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요행이었다. 하지만, 참혹한 전쟁의 참상에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간신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호로자식’이라 업신여겼다. 호로는 오랑캐(胡)의 포로(虜)라는 뜻으로 나중에는 후레자식으로 변형되었다.

 

‘오랑캐’라는 말은 본래 몽골 제국 시절 숲에서 사는 여진족을 낮잡아 부른 ‘우랑카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물건에 ‘호(胡)’자가 붙으면 대개 북방과 연관이 있다. 호밀과 호떡은 북방 오랑캐로부터 가져온 밀과 떡이고, 호박 또한 만주 지방에서 가져온 박이다. 호초 역시 북쪽에서 넘어온 산초나무며, 호도는 북방에서 온 복숭아 씨앗을 닮은 나무의 열매다. 나중에 호초는 후추로, 호도는 호두로 음운이 변했다. 

 

20250902[호두나무 열매.jpg

[호두나무 열매]

 

보통 숲길을 걸으면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나무를 찾는 재미가 있지만, 남한산성에서는 오히려 그런 나무를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나 가을에 굵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호두나무를 마주치지 않을까 마음이 불편해서다. 다행히 청량산과 검단산 일대 숲에서는 호두나무를 보지 못했다. 비슷한 가래나무도 없었다.


가래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잎자루 하나에 작은 잎 여럿이 모이는 겹잎 모양이나 커다란 열매 안의 씨앗을 먹는 거나 호두나무와 비슷하다. 호두가 전하기 전에는 가래나무 열매로 정월 대보름 밤, 잣과 함께 부럼으로 먹었다. 가래나무와 호두나무 차이점이라면 잎 모양이나 열매가 둥글둥글한 것은 호두나무고,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크기가 작고 더 많이 달리면 가래나무다. 열매 또한 가래나무가 더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다. 그냥 쉽게 구분하자면, 숲에서 만나면 가래나무고, 마을에서 보면 호두나무다.

 

[포맷변환]20250902[호두나무 열매(左) 가래나무 열매(右).jpg

[호두나무(左)와 가래나무(右)]

 

남한산성 인근을 샅샅이 찾은 것은 아니지만, 설마 호란을 겪은 통한의 역사가 밴 이곳 호두나무는 차마 없을 거로 생각했다. 게다가 남한산성 주변 식당이 닭죽으로 유명한 이유도 전쟁 당시 성에 갇힌 인조 임금이 마지막 닭 한 마리를 삶아 먹고 굶주렸다고 하여 그 한을 달래주려 닭죽이 유명하다는 설도 있다. 


어쩌면 여기 남한산성 주변에 병자년 북방 오랑캐로부터 당시 상흔을 기억하는 한 호두나무는 금기시되는 나무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병자호란 이전으로 매우 오래되었다. 통일신라 때 집마다 호두나무가 몇 그루인지 조사했던 사료가 남아있고, 더 이전 철기시대 유적지에서는 호두가 발견되기도 했다.

 

원산지인 이란에서 호두나무(Persian walnut)를 한나라 시절 중국으로 가져왔고, 이후 고려 때 원나라에 간 사신이 호두나무 묘목을 가져와 충남 천안의 광덕사에 심어 보급하였다. 지금은 그 호두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천안은 호두의 고장이 되었다. 오늘날 휴게소에서 흔히 먹는 ‘천안 호두 과자’의 뿌리다.


참고로 호빵은 오랑캐가 먹는 빵이란 뜻이 아니다. 단지 뜨거워서 호호 불어먹는 빵이란 뜻으로 호빵이다.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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