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청해진의 본거지 완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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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10-15 09:50본문
이번 모임 장소는 전남 완도였다. 예전의 완도는 이름처럼 그저 섬에 불과했지만, 1969년 구(舊) 완도대교가 완공되면서 버스가 오가는 ‘육지 같은 섬’이 되었다. 흔히 우리나라의 땅끝마을을 해남이라 부르지만, 사실 진정한 땅끝은 그 아래에 자리한 완도군이다. 최근에는 폭 4.5m에 불과하던 구완도대교를 철거하고, 왕복 4차로의 새 대교가 놓이면서 완도는 완전히 내륙과 연결된 도시로 거듭났다.
출장 일정을 마친 오후, 나는 방파제로 향했다. 항구에는 해조류 박람회관이 자리 잡고, 그 앞에는 푸른 바다 위로 수많은 배들이 떠 있었다. 육지와 다리로 이어져 있지만, 완도는 여전히 섬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실제로 완도군은 265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우리나라에서 항구가 가장 많은 고장이다.
방파제 옆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도 슬쩍 그들 무리에 섞여서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해설사는 바다를 오가는 배를 가리키며 “전복을 실어 나르는 어선입니다.”라고 말했다. 완도는 전복과 김의 주산지로, 특히 완도산 전복은 청정해역의 해조류를 먹고 자라 육질이 부드럽고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실제로 전국 전복 생산량의 약 70%가 이곳 완도에서 나온다고 한다.

[완도군 방파제에 정박하고 있는 전복잡이 어선들]
역사적으로도 완도는 ‘바다의 요충지’였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장보고 장군이 청해진을 설치해 동아시아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삼았고, 조선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어 왜적을 막아내는 전초기지가 되었다. ‘완도(莞島)’라는 이름은 ‘좋은 섬’이라는 뜻의 조음도(調音島)에서 비롯되었으며, 좋은섬을 의역하여 웃을 완(莞)자를 써서 완도(莞島)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곳이 왕골풀이 무성하여 왕골 완(莞)자를 써서 완도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를 의역하여 었다는 설과, 왕골풀이 무성해 왕골 완(莞) 자를 썼다는 설이 전해진다.
완도라는 재미있는 유래도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방파제 앞의 작은 섬이었다. 하늘에서 보면 하트 모양을 닮아 ‘하트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섬에는 상록수림 137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보호구역이다.
그저 평범한 무인도가 하트 모양을 닮았다는 이유로 연인들의 명소가 되고, 원시림 상태로 보존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니 놀라웠다. 휴대폰으로 항공뷰를 검색해보니 정말 하트 모양이었다.
이 섬의 본래 이름은 ‘주도(珠島)’다. 둥근 모양이 구슬(珠)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파도의 침식으로 섬의 한쪽이 오목하게 파였고, 그 모양이 하트를 닮으면서 ‘하트섬’이라는 별칭이 더 널리 퍼졌다.
섬 주변으로 배들이 많이 오가길래, 그 섬에 갈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해설사는 섬 자체가 천연기념물이라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고 학술연구 목적일 때만 입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도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벌목이 금지되고, 백성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28호 주도, 일명 하트섬]
숙소는 ‘청해진 한옥스테이’였다. 이름에서부터 통일신라 시대, 해적을 평정하고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바다의 제왕’ 장보고 장군의 기상이 느껴졌다.
장군이 세운 청해진은 완도 앞바다의 작은 섬 ‘장도’에 있었고, 지금도 토기 조각과 기와, 각종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장도 해안가에서는 통나무로 만든 목책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얕은 수심으로 적의 침입이 용이하자 방어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 한다.
완도는 그 자체로 역사의 증언자이며, 청해진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섬이었다.

[고즈넉하고 품위 있는 청해진 한옥스테이]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