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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행 작가의 자연탐방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 가죽나무]

태평동 어느 담벼락 가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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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5-08-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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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동은 성남시가 서울의 위성도시로 태동하던 무렵 함께 생겨난 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태평하게 살라’는 뜻을 담았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태평성대를 누릴 만큼 잘 닦인 마을이 아니라, 영장산 기슭의 숲을 모조리 베어내고 만든 민둥산 위에 급히 조성된 신도시였다.

 

당시 개발에 참여했던 고건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선(先) 입주, 후(後) 투자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을 실어다 붓는 비인간적인 이주 대책으로 도시를 만들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경사지에 천막을 치고 밤이슬을 피하며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기반시설은커녕 생계 대책조차 없는 현실에 분노가 터져 나왔다. 군사독재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저항은 거셌고, 결국 국가는 시민 요구를 수용했다. 성남출장소를 승격시키고 공업단지를 조성한 끝에 1973년 7월 1일, 성남시는 정식으로 출범했다. 그 중심이 된 동네가 태평동이었다. 이름은 주민들이 태평을 소망하며 지었다지만, 실은 “나라님 걱정 끼치지 말고 얌전히 살라”는 뜻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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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성남시 개청 (태평동) (출처 성남시)]

 

도시민이 된 이들은 스스로 터전을 일구었다. 도로가 놓이고, 상하수도가 깔리고, 천막집은 벽돌집으로 변했다. 그러나 마을에 공원이나 녹지는 조성되지 못했다. 다른 기반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했기에, 나무가 뿌리내릴 자리는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지금도 태평동 도심에는 푸르른 나무 한 그루 보기 어렵다. 그늘도, 새들이 머무를 가지도 없는 마을은 늘 삭막하다.


그런데 소규모 주차장 정비사업 중, 비탈진 한쪽에서 나란히 자란 세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 듯했다. 가만히 보니 가죽나무였다. 잎도, 열매도, 목재도 쓸모가 없어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는 나무. 그럼에도 미세먼지와 매연 가득한 도심에서 꿋꿋이 자라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다. 관리 대상이 아니니 방음벽 틈이나 콘크리트 더미에서도 제멋대로 돋아난다. 누군가 거슬린다며 베어내지 않는 한, 그저 묵묵히 살아간다.


가죽나무는 예전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취춘(臭椿)’, 냄새나는 참죽나무라 불렸다. 장자는 가죽나무를 “옹이투성이에 목수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는 나무”라 비유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을 낮출 때 “저는 가죽나무 같은 쓸모없는 재목”이라 했다. 과거 급제자들이 임금께 올린 글에서도 그런 표현을 자주 썼다.

 

조선 실학자 서호수의 『해동농서』에서도 참죽나무와 가죽나무는 구별된다. “실하고 향기로운 것은 참죽나무, 엉성하고 냄새 나는 것은 가죽나무.” 참죽은 새순이 향긋해 나물로 먹었고, 스님들마저 즐겨 찾았다. 반면 가죽나무는 향도 맛도 없어 “가짜 중나무(假中나무)”라 불리며 천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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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에서 돌보는 이 없이 자라난 가죽나무 ]

 

식물학적으로도 두 나무는 다르다. 가죽나무는 소태나무과, 참죽나무는 멀구슬나무과에 속한다. 껍질 모양도 달라, 가죽나무는 밋밋하지만 참죽나무는 흑갈색으로 갈라져 위엄을 풍긴다. 신구대학교 교정에 우람히 자란 참죽나무를 보면 왜 가죽나무가 늘 비교당했는지 알 수 있다. 참죽은 목재도 빼어나고 새순도 향긋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반면 가죽나무는 커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게다가 가죽나무는 꽃매미의 숙주가 된다. 생태계 교란종인 꽃매미가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고 번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죽나무가 베어지기도 한다. 억울한 일이지만, 나무는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란다.


그런데, 과연 나무가 주는 이로움은 무엇인가! 나무란 그 자체로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참된 존재가 아닌가. 나무는 살아 있는 초록으로 사람과 생명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가죽나무를 우리는 가짜중나무, 가중나무로 낮춰 부르지만, 영어 이름은 Tree of Heaven이다. 쑥쑥 잘 자라나 하늘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실제로 남한산성 북문 근처에서 다른 나무들 위로 쑥 솟아 하늘을 향해 자란 가죽나무를 본 적이 있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아도 꿋꿋이 자라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 꽃말조차 ‘누명’인 나무. 억울한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가죽나무야말로, 어쩌면 진짜 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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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보다 더 높이 자라난 가죽나무 (남한산성 북문)] 

 

이기행 작가의 著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와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성 南쪽에 사는 나무)’이 기재된 원고 내용을 바탕으로 자연과 그 속에 얽혀진 우리네 삶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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