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罪責感)의 교훈(敎訓) / 이형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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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4-11-04 19:22본문

(행정학 박사 전)성남시의회 이형만 의원)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소한 일로 지인과 말다툼을 하거나, 사회법규를 어겼을 때, 후회를 한다든지 죄책감에 사로잡혀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은 초자아의 영역으로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사회적 규범과 이상을 반영하여 올바른 행동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죄책감(罪責感)은 스스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사회적 규범이나 원칙, 개인적 신념 등에 어긋난다고 생각되거나 행동을 할 때 나타난다. 죄책감은 개인의 양심이나 성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대부분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질서는 바로 서고 건강한 사회로 살아갈 수 있다.
독일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마음속에서 격률(格率)을 거부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격률(格率)은 행위의 규범이나 윤리의 원칙으로, 도덕적으로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로, 일상의 사회윤리의 도덕적 행위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도덕적인 것을 지키지 않을 때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요즈음 잘 알려진 사람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세상이 시끄럽다. 본인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지 모르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후회와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즐거움이 넘치면 쾌락이 되고, 쾌락이 넘치면 권태로 넘어가게 된다. 도박의 경우 즐기다 보면 쾌락에 빠지고, 결국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계를 넘어 중독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패가망신 당하고, 죄책감에 포로가 되고 만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사람은 누구나 악한 존재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자연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조금씩은 해를 끼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건강한 죄책감’이란 표현을 쓴다. 인간이 저마다 최소한의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야만 좋은 사회와 서로에게 배려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긍정적인 사회의 바탕을 이룬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한강 세계 불꽃 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가 되었다. 백만이 넘는 시민이 좋은 구경을 하고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뒤 버려진 쓰레기가 58톤으로 평소에 10배가 넘는 양이라고 한다. 시민의식의 아쉬움이 남는데, 기분 좋게 구경하고, 맛있게 먹고, 즐기다가 남은 쓰레기는 가져가야지, 버리고 가면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사회적 질서의식은 어디가고, 죄책감만 높여주는 쓰레기 축제가 되어 씁쓸한 만 남겨 놓았다.
인간은 이웃과 서로 교류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사회공동체를 형성해 나간다. 서로의 의견과 생각의 차이를 발견하고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상대방에게는 상처를 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마음에도 고통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부부도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은 후회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만 남기곤 한다.
삶의 진실은 나 자신에게 있다. 인간은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만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지나친 죄책감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렵게도 하지만 나 자신을 힘들게도 한다. 그것을 교훈 삼아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깊은 죄책감에 빠지게 되면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두려움에 떨다 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럴수록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지켜주고, 사회의 새로운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형만 칼럼
행정학 박사 전)성남시의회 이형만 의원





